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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2세 실종]'가문 비극' 못면한 '미국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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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2세 실종]'가문 비극' 못면한 '미국의 왕자'

입력
1999.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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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왕자」로 불리며 미국인의 사랑을 받아왔던 존 F 케네디 2세가 결국 비운을 맞았다. 태어나면서부터 마치 악마의 저주처럼 따라다닌 「케네디가의 비극」을 지켜봐야 했던 그가 스스로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명문가문의 후계자이며 「가장 섹시한 남자」로 꼽힌 멋쟁이인 그의 죽음에 대해 미국 전체가 애도하고 있다. 아직도 미국인들은 케네디 2세가 세번째 생일날 아버지인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푸른 코트와 짧은 바지를 입고 관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던 애처러운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아버지가 대통령에 당선된지 17일뒤인 60년11월25일 워싱턴에서 태어난 케네디 2세는 어릴때부터 연이은 가문의 비극을 겪어야했다. 63년8월 태어난 남동생 패트릭은 며칠만에 조산으로 인한 호흡기 이상으로 죽었고 3달뒤인 11월22일에는 아버지가 텍사스주 댈라스에서 암살당했다.

83년 동부의 명문 브라운 대학을 졸업한 그는 정치와는 동떨어진 연극에 발을 디뎠다. 2년뒤 결국 맨해튼의 무대에서 「승리자들」이란 연극에 정식데뷰했지만 어머니의 맹렬한 반대로 인해 그의 배우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뉴욕대 법과대학원을 나온뒤에도 2번이나 변호사 자격시험에 떨어진뒤 겨우 합격, 한 타블로이드판 신문에 「멋쟁이 낙제하다」라는 기사가 실린 적도 있다. 89년8월 맨해튼의 검사시보로 들어간 그는 93년에 그만둘 때까지 자신이 맡았던 사건의 재판 6건을 모두 승소하는등 검사로서의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한평생 그에게는 「언제 정치를 할 생각이냐」는 질문이 따라다녔으나 집안의 정치인들이 속속 비운을 겪어서 인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적은 없다. 검사를 그만둔뒤 94년5월 어머니의 사망을 겪으며 오랜 휴식기를 가진뒤 「조지( George)」라는 잡지를 창간, 언론인으로의 길을 택했다.

그는 잘생긴 외모에 자가용 비행기를 직접 모는 「제트족」이자 롤러 블레이드를 타는 「신세대 귀족」이었던 탓에 영화배우 못지않은 여성팬을 갖고 있었다. 가수 마돈나, 배우 대릴 한나등 유명연예인들과 데이트를 하는가 하면 96년 피플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케네디 2세는 어머니 사망이후 어머니가 그토록 싫어했던 애인 대릴 한나와 헤어진뒤 코네티컷주 그리니치 출신의 의사 딸인 금발의 캐롤라인 베셋과 만나 결혼했다.

워싱턴=신재민특파원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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