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는 앨 고어 부통령(51)과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53)의 2파전으로 굳어지고 있다. 아직 초반전에 불과하지만 부시의 우세속에 고어가 힘겹게 추격하는 양상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시에게 15~20% 가까이 지지도가 뒤떨어지는 등 「부통령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는 고어가 당내 경선의 문턱을 넘어 본선에 접어들면 어떤 면모를 보일 것인 지가 2000년 대선의 관건이다.우선 10명의 후보가 나선 공화당 경선에서 부시는 단연 선두주자다.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서 59%의 지지율을 보이는 등 독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달 전만해도 부시와 「46대14」의 게임을 벌였던 엘리자베스 돌 전 적십자사 총재(62)가 8% 지지에 그침으로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후보군 가운데 밥 스미스 상원윤리위원장(58)과 존 카지크 하원의원(47)은 이미 탈락했고 나머지 후보중에서도 언론재벌인 스티브 포브스(52)와 베트남전 전쟁포로였던 존 맥케인 상원의원(63)이 각각 6%와 5%의 지지를 받는 정도.
반면 고어는 빌 브래들리 전상원의원(56)외에 당내 경합자가 없지만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60년대 프린스턴 대학과 미프로농구 뉴욕 닉스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던 브래들리는 당초 민주당 경선에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Mr. Bore」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고어의 부진에다 브래들리의 인기 상승으로 최근 뉴햄프셔주의 여론조사에서 10% 이내로 격차가 좁아졌다. 지난달까지의 선거자금 모금에서도 1,850만 달러를 모은 고어의 뒤를 이어 브래들리도 1,150만 달러를 모으는 저력을 과시했다. 3,625만 달러를 모아 2위인 맥케인(410만 달러)을 압도적으로 따돌린 부시에 비하면 형편없는 성적이다.
「돈이 곧 선거」라는 미국의 정치풍토를 감안할 때 일단 예선을 통과한다 해도 고어는 힘든 싸움을 할 수 밖에 없다. 벌써부터 전문가들은 내년부터 부시 진영이 TV와 신문을 통해 정치광고를 내는 등 본격적인 물량공세를 전개할 경우 고어는 속수무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부시에게는 여전히 사생활의 약점이 따라다니고 있어 언제 화약고가 폭발할 지 모른다. 이미 월남전 시절 참전을 피하기 위해 부친의 영향력으로 주방위군에 편입됐다는 의혹이 언론에 제기됐고 알콜 중독, 사업상의 특혜등 각종 의혹이 떠다니고 있다.
/워싱턴=신재민특파원 jmnews@hk.co.kr
*[미국정치] 대권레이스에 '제3의 후보' 돌풍불까...
대권레이스에 「제3의 후보」가 나올 수 있을까. 공화·민주 양당중심의 정치구도가 뿌리내린 미국에서 제 3의 후보는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후보의 성향에 따라서는 공화·민주 후보중 한쪽의 표를 잠식할 수 있어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현재 제3의 후보가 나올 수 있는 곳은 억만장자 로스 페로가 세운 개혁당. 92년 대선에서 19%의 득표력을 보였던 페로는 95년 개혁당을 창당, 96년 대선에 개혁당 후보로 나섰다. 그러나 그가 또다시 2000년 대선에 후보로 나설 수 있을 지는 미지수. 관건은 인기주자로 부상한 프로레슬러 출신 미네소타 주지사 제시 벤추라다. 23일 전당대회에서 벌어질 벤추라와 페로의 주도권 싸움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개혁당의 후보가 달라진다. 페로가 이길 경우 자신이 출마할 공산이 크지만 벤추라가 이기면 그가 밀고 있는 공화당 3선 상원의원 출신인 로웰 와이커 전코네티컷 주지사가 유력하다.
그러나 ABC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5%가 고어 부통령과 부시 주지사의 2파전을 원하고 있어 제3후보의 돌풍을 기대하기는 여전히 힘들다.
/워싱턴=신재민특파원
*[이란] 학생시위 보수파 승리
이란 사태가 보수파의 완승(完勝)으로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6일간 전국을 뒤덮었던 개혁의 기운(氣運) 대신 강경 보수파들의 「보복의 목소리」가 거리를 메웠다. 이제 시위 학생들은 「사회불안 야기」 등의 죄목으로 문책을 감내해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압돌바헤드 무사비-라리 이란 내무장관은 10만여명의 보수파들이 관제 시위를 벌인 14일 『통합을 지향하는 시민들의 도움으로 소요가 완전히 통제됐다』고 선언했다. 고위 회교 성직자이자 이란 최고 국가안보위원회(SNSC) 부위원장인 하산 로와니는 『지난 며칠간 미쳐 날뛰며 이슬람 체제를 공격한 자들은 「공화국의 적」으로 간주, 사형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79년 회교혁명 이후 최대 소요사태로 기록될 이번 시위의 실패는 개혁파 지도자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의 입지 약화와 보수파의 득세로 이어질 전망이다. 당장 하타미와 그가 이끄는 시민사회운동당은 사태 방조 혹은 소요 대처능력 부족 등의 비난에 직면했다. 이와함께 하타미 정권이 추진해온 친서방적 개혁정책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개혁파는 시위 초기에 확보한 「명분」을 지키지 못한 채 결속력과 조직력에서 허점을 보인 끝에 허무하게 자멸하고 말았다. 8일부터 4일간은 평화적 시위를 통해 기세를 떨치는 듯 했지만 12, 13일 막판 시위가 정체 불명의 소요사태로 돌변, 「정국 안정」을 내세운 보수파에 대반격의 빌미를 제공한 것.
결국 시위대의 우상이던 하타미 대통령 마저 무력진압을 경고하며 「꼬리」를 내려야 했고, 이슬람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강경 진압을 명령했다. 여기에다 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는 국영 TV 등 언론은 하메네이 지지를 재천명하며 이슬람 강경파 주도의 「반격 집회」 참가를 종용했다. 때문에 언론자유, 경찰총장 처벌 등 학생 시위대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됐다.
그러나 이번 학생시위는 하타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이란 민중들이 평화적인 변화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란인들은 시위를 통해 언제라도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축적했고, 이는 앞으로 이란정국에서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테헤란의 한 대학교수는 『침묵하는 다수는 분명히 하타미 대통령과 학생들의 편에 서 있다』면서 『그러나 하메네이를 추종하는 유력한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했다』고 말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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