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이 많아, 너무나 억울해 구천을 떠도는 한국의 원귀(怨鬼)들. 서양의 악령(惡靈)과는 다르다. 서양의 기독교사상, 악마주의가 아닌 유교와 불교와 무속이 낳은 한국영화 속의 귀신들은 가부장제, 신분과 성차별의 희생자들이었다. 대부분이 처녀들이다. 그들은 뱀파이어(흡혈귀)나 울프(늑대)처럼 인간에게 무차별적 해악을 가하지도 않고, 전염성을 가지지도 못했다.하얀 소복에 산발로 특징지워진 귀신들은 장화홍련처럼 계모의 학대를 복수하고, 아버지로부터 용서를 받으면 물러나거나, 몸을 뺏고 자신을 죽인 양반을 복수하면서 사라진다. 또 사랑하는 남자가 달래면 눈물을 흘리며 원한을 녹인다. 불교적 주술(부적)에 꼼짝 못한다.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에게 귀신 영화는 여성의 종속성, 의존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비판받기도 한다(장화홍련전, 월하의 공동묘지, 백사부인, 원한의 공동묘지). 이는 홍콩 시나리오가 원작인 「은행나무 침대」에서 보듯 동양의 공통된 시각이다.
반면 인간이 되고자 하는 「천년호」(감독 신상옥, 69년)나 「구미호」(감독 박헌수, 94년)는 민담이나 설화에 등장하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여우에 다분히 서양적 귀신관을 반영한 것. 아예 서양귀신을 그대로 본 딴 81년 작 「흡혈귀 야녀」(감독 김인수)도 있다. 일본 소설을 그대로 옮긴 「링」(김인수감독, 개봉중)은 양성(兩性)이란 성의 정체성 문제를 건드리며 서양식 악령의 전염성까지 혼합시킨 하이브리드(잡종).
그러나 여전히 주류는 전통적인 원귀들이다. 촬영기술과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로 더 으스스해지고 원한이 강해졌지만 여전히 「여고괴담」(감독 박기용, 98년)의 귀신은 부조리한 학교교육의 희생자였다. 자살한 귀신의 모임인 「자귀모」(감독 이광훈, 8월 개봉 예정)의 식구들은 애인에게 버림받아, 실직해, 뚱뚱한 몸 때문에 놀림받아 죽은 귀신들이다. 그들은 더 이상 공포의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측은함과 웃음을 주는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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