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새 주민등록증 발급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한글이름에 한자를 병기키로 방침을 바꾸면서 전국 행정업무가 일대 혼란에 빠졌다.14일 행정자치부는 28일께부터 시작하려던 새 주민증 발급을 무기 연기하고 뒤늦게 한자병기를 위한 컴퓨터소프트웨어 개발과 추가예산 확보를 서두르는 등 비상이 걸렸다. 전국 읍·면·동사무소도 이미 3분의 2가량을 완료한 주민증 자료입력작업을 중단하고 한자이름 입력을 새로 시작해야하는 상태다.
◇중앙부처의 혼란
행자부는 이달말부터 내년 3월말까지 전국 17세이상 국민 3,600만명에게 주민증 발급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었으나 한자이름 병기방침에 따라 7개월이상 발급이 지연될 전망이다.
현행 주민전산망의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4,800자의 상용한자만을 다룰 수 있어 희성이 많은 우리 성씨를 표기할 수 있는 5만자 규모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지금부터 착수해야 하기 때문.
여기에 필요한 추가예산도 20여억원에 달한다. 올해초 조폐공사가 공모해 채택한 새 주민증 디자인도 한자란을 만들기 위해 수정해야 한다. 특히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한 주민등록법이 2000년6월1일이후 기존의 주민증을 사용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법개정도 서둘러야할 형편이다.
◇일선기관의 혼란
전국 읍·면·동사무소는 지난 5월27일부터 새 주민증을 위한 화상지문 입력을 시작, 이미 61%의 작업을 완료했다. 특히 인천동구는 사실상 발급대상 전체에 대한 입력작업을 끝냈고, 서울지역 대부분의 동사무소도 80%이상의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선동사무소는 앞으로 3,600만명의 주민증 자료에 구주민등록표와 일일이 대조하며 한자이름을 집어넣는 수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동사무소당 발급대상이 8,000명에서 7만명에 이르러 2, 3개월의 작업기간이 추가로 필요하다.
서울지역 S동사무소의 동장은 『주민증 업무를 위해 벌써 3개월째 휴일에도 일하는 등 비상근무체제였다』면서 『한자지식을 요하는 작업은 공익요원을 동원할 수도 없어 난감하다』고 반발했다.
◇왜 바뀌었나
주민증 이름의 한자병기문제는 총리실과 행자부측이 오래동안 실랑이를 벌인 문제. 행자부는 매년 주민증 신규·재발급이 400만명에 이르는 점을 들어 순차적으로 한자병기를 해나갈 것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13일 국무회의에서 김대중대통령이 한자병기문제를 꺼낸 뒤, 김종필총리가 즉각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자병기를 추진하겠다』고 보고해 새 방침이 확정됐다. 지난 1월부터 6개월동안 한글전용을 전제로 준비되온 주민증 갱신방침이 여권 지도부의 말한마디로 하루아침에 번복된 것이다.
/유승우기자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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