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리스트, 최순영 리스트…. 끝없이 터져 나오는 뇌물 리스트. 이제 재벌과 정치인들이 안마 서비스를 받았다는 증기탕 리스트까지 등장한 판이다.MBC가 매주 목요일 방영하는 「한국 100년, 우리는 이렇게 살았다」는 15일 밤 11시 「전격공개! 100년의 뇌물 리스트」를 방영, 뇌물의 뿌리깊은 역사를 추적하고 해부한다.
부정부패가 있는 곳에 항상 빠지지 않는 뇌물. 뇌물은 세월과 함께 업그레이드됐다. 액수와 전달 수법에 이르기까지. 이 프로그램은 100년 역사를 통해 뇌물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로 한보그룹 정태수 전총회장을 지칭한다. 91년 수서지구 택지분양을 둘러싸고 1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액수의 뇌물을 건넨 후로도 97년 정가를 뒤흔든 한보비리 사건에서 기상천외한 뇌물전달 수법이 밝혀져 유명해졌다. 뇌물을 받을 대상과 액수별로 사과상자, 라면박스 등 다양한 크기의 상자와 가방을 마련하고 「007 작전」을 방불케하는 전달 수법을 구사한 이 분야의 「대가」였다. 이 사건을 둘러싼 「깃털론」과 「몸통론」은 당시의 사회적 화두였다.
100년 동안 가장 작은 뇌물과 큰 뇌물은 어떤 것일까? 1905년 을사보호조약 조인에 찬성한 친일파 이근택. 그는 1882년 임오군란으로 충주로 피신한 민비의 밥상에 매일 생선을 바쳐 민비 환궁 후 출세가도를 달렸다. 78년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 공직자 190여명이 관련된 이 비리는 뇌물 부피로 따지면 역사상 가장 큰 것이었다고 이 프로는 말한다.
가장 억울한(?) 뇌물은 한 공무원 인생을 망친 냉면 한 그릇. 68년 모 도청 지역회계과 직원 정모씨가 기업체를 방문, 당시 150원하는 냉면 한그릇을 대접받고 관폐 공무원으로 낙인 찍혀 직위해제를 당했다.
뇌물의 종류는 다양하다. 작게는 떡값, 촌지, 향응, 상납에 이르기까지 사회 구석구석에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역사가 가장 오래된 뇌물의 형태는 무엇일까? 바로 성(性)상납이다. 구한말 세도가 김홍륙에게 첩을 바쳐 내무대신이 된 사람이 있다. 또한 친일파 이지용의 처 이옥경은 남편의 출세를 위해 일본 장교에게 몸을 바쳤다. 성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듯 지금까지도 성을 매개로 한 뇌물은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뇌물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권력과 돈을 소유한 계층의 부패 불감증을 지적한다. 구한말 부패가 도를 넘을 때 뇌물의 정점에 선 사람은 고종이라고 한다. 대신에서 무당까지 돈을 싸들고 고종 주위를 맴돌았을 정도로 국왕의 부패가 심했다. 윗물이 맑지 못하니 아랫물이 당연히 흐릴 수밖에.
현대 사회의 고질적인 정경유착형 뇌물은 1920년 일제의 회사령 폐지에 따라 최초의 자본가군이 형성되면서 시작했다고 한다. 자유당 시절 이기붕 부통령 부인 박마리아에게 이권을 둘러싼 기업인들의 뇌물이 쇄도했다. 64년 기업들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밀가루 시멘트 설탕의 가격 폭등을 유도한 「3분 폭리사건」 은 대표적인 정경유착 뇌물사건. 한국경제가 권력의 주도로 본격적인 고도성장을 달리며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부정부패는 도를 더한다.
뇌물의 병폐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국가적 경쟁력 저하를 차치하더라도 22명의 어린 생명을 앗아간 화성 씨랜드화재 사건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고 뇌물 의혹이,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의 면면이 지금까지 시원하게 밝혀진 적이 몇 번이나 있는가.
MBC 장태연 CP(책임연출자)는 『정치적, 사회적 이유로 뇌물에 대한 철저한 단죄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뇌물의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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