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동족상잔의 비극은 2대독자였던 아버지를 앗아가고 아들을 잃은 한으로 할머니마저 바로 세상을 뜨게 했다. 졸지에 홀로 되신 할아버지는 28세 홀며느리와 핏덩이 손자들을 데리고 눈물겨운 세월을 사셨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직접 몸으로 가르치신 「검약과 절제」의 철학은 아직도 내 삶의 지침이 되고 있다.할아버지가 83세로 운명하신 후 입으시던 옷을 정리하던 중 조끼의 호주머니 속에서 쌀 몇톨과 콩 몇알이 나와 의아했다. 알고보니 길에 다니시다 땅에 떨어직 몇알의 곡식을 주어 넣으신 것이다. 할아버지는 겨울 내내 추수를 끝낸 볏단을 다시 풀어 벼이삭을 찾아 훑어내시기도 했다. 추운 겨울 쪼그리고 앉아 하시던 일에 조소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작 할아버지는 개의치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어렸을때 너무 가난해 서당에 다니지 못하고 또래 아이들이 공부하는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참외를 팔았다고 한다. 정식 교육은 받지 못했어도 국한문은 물론 곱셈 나눗셈도 척척이셨다.
손자들에게 큰 소리로 글 익히는 것을 생활화해 어둑해질 무렵 등잔을 켜고 특히 단종애사를 읽으라고 하셨다. 문종이 어린 단종을 안고 노신하들에게 어린 세자가 성군이 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대목이 아직도 생생하다. 할아버지 덕분에 말을 업으로 하는 아나운서가 되고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밥도 한숟갈 더 먹고 싶다 할때 수저를 놓으라는 건강법도 할아버지의 가르침이다. 웬만한 거리는 맨발로 걸으라는 말씀도 어렸을 때는 실천하기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중요한 발지압법이 아닐 수 없다.
돌아가실 때까지 검약과 절제를 실천하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아직도 숙연한 기분이 든다.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내 수칙이자 우리 가족의 가훈으로 정했다. 다만 한 가지, 할아버지가 가르치신 음주의 절제는 왜 따르지 못하는 것일까를 자책하면서….
/ 박용호·KBS아나운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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