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결단-기업가 건의-美조언 합작품 -◆경제개발 계획 누구 주도했는가
90년대 말에 들이닥친 한국 경제의 위기는 박정희 시대의 개발 독재 시스템이 낳은 구조적 결과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기적」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 지 혼돈에 차 있다.
그러나 전후 복구에 치중했던 50년대의 상황을 극복하고, 도약(Take-off)을 통한 산업화의 단초를 열었던 시대가 바로 60년대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경제개발 과업을 당시 최고 지도자였던 박정희가 주도했는지, 아니면 박정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제적 요인(주로 미국)에 의해 조성된 역사적 대세 내지 필연이었는지에 대한 논쟁이 현재 학계에 제기돼 있다.
그런데 한국의 경제개발은 ▲공공부문인 국가(「박정희」로 대표) ▲민간부문인 사회(시장의 대표적 구성원인 기업, 노동자_농민 등 사회 세력), 그리고 ▲「미국」으로 대표되는 세계체제(외세) 등 3자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고찰돼야 한다.
보다 단순화하자면 박정희_기업가_미국 등 3자는 한국의 대외지향적 경제발전에 있어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적 인자로서 언제나 상호작용하면서 때로는 공조(synergy)하기도 했고 때로는 서로를 저해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어떤 인자가 주도적이었는지 분간할 수는 있다.
◆자립 경제의 기반
박정희 시대의 근대화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62~66년)으로부터 시작됐다. 모든 사회-경제적 악순환을 시정하는 자립경제 달성을 위한 기반구축을 기본목표로 했던 이 계획은 50년대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청산하는 데 기여했고, 60년대 한국경제의 구조적 특징과 성장잠재력을 배태(胚胎)케 하여 오늘의 경제 성장을 가능케 한 첫 발이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계획 작성에 필요한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못했던 1차 계획은 일관성이나 타당성, 그리고 최적성 등의 계획평가 기준으로 볼 때 그리 잘된 계획은 아니었다. 시행 첫 해부터 커다란 시련에 봉착했으며, 62년 11월~63년 수정작업을 거쳐 64년 2월 수정안이 확정됐다.
65년과 66년 수출의 비약적 발전을 경험하게 되고 실적치(8.5%)가 목표치(원안 7.1%에서 5%로 하향 수정됐음)를 크게 상회하자, 목표치가 지나치게 높아 그 실현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판론을 개진했었던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계획에 참여했던 인사나 일반 국민들도 한국경제의 장래에 대한 희망과 경제계획의 수립과 이의 실천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됐다.
◆50년대 후반부터 추진
그런데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아이디어는 박정희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이는 50년대 후반 이래 추진됐던 것이며, 특히 장면 정권에서 미국의 후원 아래 작성된 구체안이 있었다.
61년 5.16으로 정권을 잡은 혁명 지도부는 그 정권의 정통성을 높이고, 미국의 원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자주적인 경제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장면 정권에서 추진됐던 경제개발계획을 더 강력하게 밀고 나갔다. 미국은 한국에서 공산혁명을 막고 안정을 이룩하기 위해 한국정부에 50년대 중반 이후 장기적 경제 발전계획의 수립을 종용해왔다.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적 안
군사정부는 이 계획을 만드는데 있어 장면정부와 달리 미국과 협의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이승만과 장면 정부의 안보다 다소 자주적인 안이 성안됐다.
미국은 박정희 정권이 출범할 때부터 그 정권이 민주주의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음에 우려를 표명했으며, 같은 맥락에서 사전협의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확정안 발표인 61년 12월 이전부터 1차계획의 시안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성장률을 낮추라는 주문에서부터 제철소 건설은 힘들다는 충고까지 했으며 결국 64년 2월 수정안을 내놓게 됐다. 원안은 자주적이며 대항적인 성격을 다소 함축하고 있었음에 비해 수정안은 대외지향적, 개방적 성격을 보다 많이 함축하고 있었다.
이는 경제개발계획이 62~63년 2년간 실행되는 과정에서 경공업 제품 수출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이뤄지면서, 이들 제품을 중심으로 수출 목표를 높이 잡은 데서 연원(淵源)한다고 할 수 있다.
65년을 전후한 시기에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채택되는 데 있어서 미국의 직접적인 종용이나 압력 행사는 없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당시 경공업 수출 호조에 따른 박정희 자신의 결단에 의존해서 이뤄진 결정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강제 권유?
기존의 지배적 가설은 미국의 재정 안정화 정책 시행 등의 강제성 권유가 있었으며 이것이 수출지향적 수정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경제개발계획을 수정하라는 압력은 가했지만, 성장률을 하향조정하라든지 아니면 공장시설에 투자하지 말고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라고 권고했을 뿐이지 수출지향적 산업화를 하라고 종용하지는 않았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강권에 따라 재정안정화 정책을 시행하는 데 있어, 긴축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억제시키는 조처를 취했지만 실제로 한국정부는 인플레이션 억제보다 수출증대에 주력했다.
따라서 수출지향적 산업화로의 선택은 민족 내부의 주체적 결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스렇다고 이 결단이 치밀한 계획에 의해 뒷받침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출지상주의는 1차5개년계획의 수정안을 처음부터 관통하는 원리는 아니었으며 65년을 전후해 박정희에 의해 힘을 얻고 강력하게 추진됐던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64년 2월에 확정된 제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수정안에는 수출입국이라든가 수출지상주의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
결론적으로 미국의 한국정부에 대한 장기적 개발계획 적성 종용이 하나의 배경이 된 상태에서 당시 기업가의 대외지향적 정책건의에 박정희가 결단하여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추진하고 집행했던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은 박정희-기업가-미국이라는 3자의 유기적 관계속에서 증폭, 추진되고 결실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완범 한국정신문화원 교수
[현대사 다시쓴다] 저자 약력.저서.연구자료
◆이완범 한국정신문화원 교수 약력
87년 연세대 정외과 졸 86년 동 대학원 석사 92~96년 국사편찬위원회연구원 97년부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현대사연구소 조교수
◆저서
▲한반도 분단의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 ▲미국과 국내정치세력의 역학관계, 1945~1948 ▲미국의 점령정책과 한국, 1945~1948 등
◆연구자료
▲부흥부산업개발위원회 「경제개발 3개년계획안」 59년 12월
▲부흥부산업개발위원회 「경제개발 5개년계획수립요강」 61년 2월
▲경제기획원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62년 1월
▲경제기획원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보완계획」 64년 2월
▲김정렬 「한국경제정책 30년사:김정렬 회고록」중앙일보사, 90년
▲김종필 「JP 칼럼」 서문당, 71년
▲유원식 「5·16 비록:혁명은 어디로 갔나」인물연구사, 87년
▲김낙년 「1960년대 한국의 공업화와 그 특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현대사연구소(편) 「한국전쟁후 사회변동연구」 98년
▲이완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입안과 미국의 역할(「한국현대사의 재조명」 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99년
▲木宮正史 「한국의 내포적 공업화전략의 좌절」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 논문 91년
▲박동철 「한국에서의 국가주도적 자본주의 발전방식의 형성과정」 서울대 경제학과 박사학위논문 93년
▲이만희 「한국의 산업정책에서의 경제기획원의 역할」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논문 92년
▲Jang, Ha Won 「Phase of Capital Accumulation in Korea and Evolution of Government Growth Strategy, 1963~1990」Univ. of Oxford 95년
▲Satterwhite, David Hunter 「The Politics of Economic Development: Coup, State and the Republic of Korea's First Five Year Economic Development Plan(1962~1966)」Univ. of Washington 94년
[현대사 다시쓴다] 저자 약력.저서.연구자료
◆이완범 한국정신문화원 교수 약력
87년 연세대 정외과 졸 86년 동 대학원 석사 92~96년 국사편찬위원회연구원 97년부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현대사연구소 조교수
◆저서
▲한반도 분단의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 ▲미국과 국내정치세력의 역학관계, 1945~1948 ▲미국의 점령정책과 한국, 1945~1948 등
◆연구자료
▲부흥부산업개발위원회 「경제개발 3개년계획안」 59년 12월
▲부흥부산업개발위원회 「경제개발 5개년계획수립요강」 61년 2월
▲경제기획원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62년 1월
▲경제기획원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보완계획」 64년 2월
▲김정렬 「한국경제정책 30년사:김정렬 회고록」중앙일보사, 90년
▲김종필 「JP 칼럼」 서문당, 71년
▲유원식 「5·16 비록:혁명은 어디로 갔나」인물연구사, 87년
▲김낙년 「1960년대 한국의 공업화와 그 특징」,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현대사연구소(편) 「한국전쟁후 사회변동연구」 98년
▲이완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입안과 미국의 역할(「한국현대사의 재조명」 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99년
▲木宮正史 「한국의 내포적 공업화전략의 좌절」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 논문 91년
▲박동철 「한국에서의 국가주도적 자본주의 발전방식의 형성과정」 서울대 경제학과 박사학위논문 93년
▲이만희 「한국의 산업정책에서의 경제기획원의 역할」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박사학위논문 92년
▲Jang, Ha Won 「Phase of Capital Accumulation in Korea and Evolution of Government Growth Strategy, 1963~1990」Univ. of Oxford 95년
▲Satterwhite, David Hunter 「The Politics of Economic Development: Coup, State and the Republic of Korea's First Five Year Economic Development Plan(1962~1966)」Univ. of Washington 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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