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은 추락의 전조순조로움이 위험신호
만사가 순조로우면 절로 콧노래가 나오고 휘파람을 불고 싶어진다. 그러나 골프장에서만은 콧노래나 휘파람은 절대 금물이다. 콧노래나 휘파람 뒤에는 필경 비명이 숨어 있다.
구력 10년이 넘는 L씨는 핸디캡 얘기만 나오면 난처해 한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70대후반도 치는데 한번 무너지면 90타를 훌쩍 넘어버린다. 핸디캡을 주고 받는 내기게임을 할 경우 상대방은 좋은 스코어를 기준으로 핸디캡을 적게 주려 하고 본인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많은 핸디캡을 받으려고 한다. 골프깨나 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핸디캡을 더 달라고 떼를 쓰는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체격 구력 스윙 등을 감안한 L씨의 객관적인 골프실력을 분명 안정된 싱글이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자신은 왜 잘 나가다가도 맥없이 무너지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번 리듬이 깨져 플레이가 꼬이기 시작하면 『이상하네. 뭐가 문젠지 알 수도 없으니 미치겠네』라는 푸념만 되풀이한다.
그러나 L씨와 골프를 쳐본 사람들은 그가 어디선가 한번은 무너지고 마는 이유를 알게 된다. 그와 라운드하면 어김없이 한번은 그의 콧노래나 휘파람을 듣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추락의 전주곡이다. L씨는 서너홀 연속 파행진을 하거나 버디라도 잡게 되면 가만 있지를 못한다. 오너가 된 그는 먼저 드라이버를 뽑아들고 다음 홀로 걸어가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거나 휘파람을 분다. 그 다음에 날린 샷은 신기하게도 미스샷이 되고 만다.
『잘 나가다가 왠 일이지? 골프란 알 수 없단 말이야』라며 티잉그라운드를 내려오는 그의 얼굴에는 미스 샷을 만회하겠다는 결의가 서려 있다. 그러나 다음 샷 역시 그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
동반자들은 그의 콧노래를 들을 때 이미 의미심장한 미소를 교환한 터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진 않지만 속으로는 이구동성으로 『올 것이 왔군』하고 쾌재를 올린다. 잘 나가던 L씨가 어디선가 무너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순조로운 게임에 들뜬 나머지 콧노래나 휘파람를 부는 순간부터 긴장이 풀리고 자만심이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골프장에선 가무음곡은 절대 금물이다. 아무리 기분 좋아도 장갑을 벗을 때까지는 들뜬 가슴을 맷돌로 꽉 눌러둬야 한다.
/편집부국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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