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사용을 적극 권장하는 정부방침에도 불구하고 병원들은 여전히 「카드사절」을 관행으로 하고 있어 환자와 가족들에게 큰 불편을 주고 있다.국세청은 카드사용 촉진을 위해 이달 10일까지 92개 의료법인과 연간수입금이 7,500만원 이상인 병원에 대해 의료비를 카드로 결제토록 했다. 재정경제부도 지난달 신용카드로 의료비를 결제하면 최고 300만원 또는 연봉의 10% 초과금액에 대해 소득공제를 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병원의 상황은 정부정책과는 판이하다.
9일 오후 서울대병원. 대부분 사람들이 현금지급기 앞에 늘어서서 돈을 찾느라 분주했다. 응급실 외에는 카드를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보호자 김광수(金光洙·40·수원 팔달구 임계동)씨는 『카드결제가 안돼 불편한 데다 현금인출 수수료까지 부담해야 한다』며 짜증스러워 했다.
서울대병원측은 카드결제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창구직원들은 이에 대해 어떤 계획이나 지침도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고대 구로병원과 보라매병원, 중대 필동·용산병원, 서울백병원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서울백병원의 경우 카드조회기는 설치돼 있지만 특별히 요청하는 응급실환자 외에는 카드를 받지 않고 있다. 보라매병원은 응급실환자만 카드사용을 허용하고 있었다.
중대필동병원 원무계장은 고객이 요청하면 카드로 병원비를 받고 있다고 말했지만 창구직원은 『시스템상 응급실 외엔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대목동병원과 경희대의료원, 을지중앙병원 등은 입원환자도 신용카드 결제를 해준다는 말과는 달리 1주일마다 하는 입원비 중간정산에는 현금결제만 허용하고 있다.
병원측은 『카드사용을 전면확대할 경우 수수료 때문에 수지를 맞추기 힘들다』『카드사용자가 많으면 일반 카드조회기 대신 별도의 결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용카드사와 관련협회인 여신금융협회의 얘기는 달랐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백화점도 아닌 병원에서 별도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일반 카드조회기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병원의 카드수수료(1.5%)는 일반업소(3%이상)보다 훨씬 낮다』며 『병원들이 카드결제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세원(稅源)노출 때문』이라고 말했다.
환자들은 정책당국에 대해서도 비난을 쏟고 있다. 특히 재경부가 내놓은 의료비 공제혜택이 병원현장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을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카드사 관계자들은 『병원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환자들에게 불편을 강요하고 있다』면서 『병원의 카드사절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정부의 공평과세 정책이나 서민생활 부양책도 헛된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배성규기자 vega@ 이왕구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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