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공연에서 안치환은 두가지를 실수했다. 장마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 생각하고, 비와 관련한 노래를 많이 준비했다. 또 하나. 그는 청년관객이 많을 것이라 짐작하고 「청년」이란 노래를 오프닝 곡으로 불렀다. 실수. 그러나 그의 공연장은 흥이 넘친다. 극장 좌석만한 소극장 의자에 앉기엔 너무 몸이 불어난 40대 아저씨부터 아이를 데리고 와 눈치를 봐야 하는 30대 아줌마, 그리고 이제 첫 여름방학을 맞았을 법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그의 콘서트 공간은 다양한 연령의 스펙트럼이다.「서산에 붉은 해 걸리고 강변에 앉아서 쉬노라면 낯익은 얼굴들 하나둘 돌아온다…」. 「청년」 「평행선」으로 시작한 공연이 무르익을 무렵. 십수년전 김민기가 어느 모임에서 불렀던 「강변에서」를 부르면 관객들은 어느 새 세월의 틈새를 벌려 옛 기억을 들춰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김남주 시인의 시에 노래를 붙인 6집 수록곡 「돌멩이 하나」.
『학전 소극장은 인연이 많은 곳이죠. 대학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김민기 선배가 운영하는 곳이고, 그리고 91년 이곳에서 처음 제 콘서트를 가졌죠. (김)광석이 형 죽고 나서 한번 무대에 서겠다 했는데 이제야 서게 됐네요』 사람들이 죽은 포크 가수 김광석 같은 역할을 바라기에 그는 아직도 김광석을 잊지 못한다. 공연을 20일 해본 적은 있지만 1개월1일(7월1일~8월1일·대학로 학전그린 극장·(02)763_8233)에 이르는 장기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첫날은 야릇한 느낌이었어요. 집에 가면 아 고개 하나 넘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소극장 공연은 음악을 일상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죠』 화려한 조명에 대단한 관객 수는 아니지만 소극장 공연은 표정을 보고, 밀착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 좋다. 3년만에 갖는 이번 소극장 라이브 공연은 또다른 의미가 있다. 올초부터 나온다 나온다 했던 6집 앨범을 팬들에게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3분30초란 방송음악 길이에 지나지 않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지배당하는 것 같아요. 7분10초 짜리 「어머니 전상서」 처럼 이번 음반의 곡들은 대체로 길어요. 가장 짧은 곡도 4분20초. 그래서 「내가 만일」의 작곡가인 김범수씨에게 부탁해 곡 하나를 더 받았어요. 3분48초 짜리 「사랑하게 되면」이죠. 타협이라고 말할 지는 모르겠지만 음반 기조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음반 작업도 길어졌고, 여기에 정상적인(?) 길이의 노래를 한 곡 더 집어 넣고 나니 여름이 됐다. 포크 색채가 짙어진 그의 이번 앨범을 여름에 낸다는 것은 상업적으로는 어리석은 일. 기획사에서는 출시를 8월 중순 이후로 미루고 있다. 이 과정은 한마디로 우리나라 대중음반 시장에서의 포크의 열악한 입지를 반증한다.
그러나 어떠랴. 그는 여전히 굳건하다. 『팬들에게 미안해』 1,000장만 제작해 공연장에서만 팔고 있는 6집의 제목 「I Still Believe」처럼.
사족 하나. 그는 지난 4월부터 일주일에 나흘간 하루 2시간30분씩 연세어학당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 미국에 갔을 때 뮤지컬을 알아 듣지 못해 속상했기 때문이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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