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23대 법흥왕은 21대 비처왕이 죽자 그의 아내였던 벽화와 관계를 가져 삼엽궁주라는 딸을 낳았다. 또 처제인 오도와도 정을 통했다. 심지어 오도의 딸인 옥진궁주와도 관계를 가졌다.1,300여년 전 신라인 김대문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화랑세기」는 재위기간중 처음으로 불교를 공인, 신라통일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법흥왕의 또다른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화랑세기」는 신라 화랑들의 우두머리였던 풍월주 32명의 가족관계, 통정관계, 그리고 권력관계를 기록한 책. 그러나 원본없이 필사본과 발췌본만이 남아있을 뿐더러, 그것이 그려내고 있는 당대 신라인의 모습 또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어 89년 세상에 공표된 후로 10년째 위작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10일 오후 7시10분에 방송되는 KBS 제1TV 「역사스페셜_화랑세기 필사본 진위논쟁 10년」은 「화랑세기」를 둘러싼 진위여부 미스터리를 추적한다. 먼저 현존하는 「화랑세기」 필사본이 모본과 발췌본 2종으로 존재하는 이유와 내용이 상당부분 다른 이유를 살펴본다.
진위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직접적인 이유중 한가지, 즉 「화랑세기」에서 묘사되고 있는 당대 지배계층들의 「혼탁한」 혼인 및 통정관계를 추적한다. 그럼에도 어떻게 당대 신라의 가족관계는 유지될 수 있었는지 그 실상을 짚어본다. 마지막으로 화랑 관련 금석문 및 문헌, 현존하는 유적, 유물과의 비교를 통해 또다른 해법을 찾아본다.
「화랑세기」를 둘러싼 진위논쟁에 대해 최근 「화랑세기」 한글 주해서를 낸 서강대 이종욱 교수는 『복잡다단한 남녀관계 등 「화랑세기」의 일부 대목에 대한 논란은 당대 신라인의 관점이 아닌 유교적 잣대로 빚어진 오해』라며 『「화랑세기」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채워넣지 못하는 신라사의 공백을 메꾸는 귀중한 사료』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허진 담당 PD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여러 의문점들을 꼼꼼히 살펴봄으로써 공론화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프로그램의 의미를 설명했다.
/황동일 기자 do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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