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간 민족과 애환을 함께 해 온 대구 연초제조창이 8일 문을 닫는다. 해방이후 최초의 우리 담배인 「승리」를 비롯, 수십여종의 담배를 생산해 온 한국 담배의 산실이 구조조정의 거센 파도 밀려 퇴장하는 것이다.1906년 일본의 「동아연초주식회사」 대구 궐련공장에서 터를 닦아 1921년 조선총독부의 조선전매국 대구지방전매국으로 가동을 시작한 대구창은 해방이후 재무부 전매국으로 개편된 뒤 담배 제조기술 발전의 견인차였다. 한국전쟁으로 서울 전주등 연초공장이 모두 소실됐을 때도 대구창은 건재해 「화랑」담배로 사선(死線)에서 지친 장병의 마음을 달랬다. 또 전시 유일한 세입원으로 전비(戰費)를 감당하는 역사적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대구창이 생산한 대표적인 담배로는 40년대의 장수연과 백구, 50년대 건설·화랑·백합, 60년대 아리랑과 파고다·새마을, 70년대 청자·은하수·거북선등이 꼽힌다. 대구창은 80년대 한산도와 태양, 환희에 이어 최근까지 솔과 88라이트, 디스를 생산해 왔다.
해방이후 대구창이 제조한 담배수량은 모두 210억여갑. 서울과 부산을 1,985차례 왕복하는 길이로 시가로 환산하면 23조원에 이른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1920년대 대구연초제조창내에서 담배를 제조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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