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이 안선다』 가장 믿을 만한 자산보유수단이었던 금이 요즘 이름값도 못하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을 내다 팔기 시작하면서 값이 폭락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보유 금 25톤을 매각한 6일 금값은 20년내 최저수준인 온스당 257.35달러로 떨어졌다.금을 외면하는 소위 「역(逆) 골드 러시」에는 큰 손인 국제통화기금(IMF)도 동참할 예정이어서 금값 하락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IMF의 금보유량은 지난해 말 현재 3,217톤으로 미국과 독일 다음으로 많다.
왜 금을 기피하나 경제 성장기, 즉 매년 물가가 상승하던 시절에는 금이 단연 인기였다. 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한 세계경제의 침체로 디플레(자산가치 하락) 우려가 확산되면서 금은 매력을 잃었다. 예를 들어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금은 2억6,161만온스로 지난해 말 시세로는 753억달러였으나 최근에는 670억 달러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단지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70억달러 이상을 손해 본 셈이다. 미국이 금을 팔아 채권을 샀다면 그 이상의 이득을 얻었을 지 모른다.
국제통화제도에서 금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는 것도 금값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한때 금은 환율안정수단으로 활용됐으나 고정환율제에서 자유변동환율제로 바뀌면서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영란은행도 현재 보유중인 715톤중 415톤을 단계적으로 매각하되 연내 125톤을 팔 계획이다. IMF도 10%가량 내놓을 것을 검토중이며, 스위스도 매각의사를 밝힌 바 있다.
금 팔아야 하나 사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많으면 당장 값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금값 하락세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다. 영란 은행의 금매각 입찰에는 높은 경쟁으로 낙찰가가 시세 보다 높은 온스당 261.20달러로 결정됐다. 이는 금이 장기적인 자산 보유 수단으로 여전히 가치가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또한 각국 중앙은행이 갖고 있는 금은 전세계 보유분의 4분의 1에 불과해 이들의 매각러시에도 금값이 무한정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정희경기자 hk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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