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민회의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국가보안법 개폐 발언에 따라 그간 캐비닛 속에서 잠자고 있던 국가보안법 손질안을 다시 꺼내들었다. 국민회의는 이념대결 의식을 담고있고 집권세력에 의해 정치적으로 악용돼 왔다는 비판을 받는 국보법의 근본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2월에는 국가보안법 제7조의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죄, 10조 불고지죄를 위헌 및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보고 개정 또는 폐지키로 당론을 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동여당인 자민련이 국보법폐지를 반대하는 것을 비롯해 보수층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있었다.
김대통령의 필라델피아 발언 이후 국민회의 분위기는 상당히 공세적으로 달라졌다. 유선호(柳宣浩)인권위원장은 『일단 7조를 개정하고 10조는 폐지한다는 기존의 입장엔 변화가 없다』면서도 『이적표현물 제작죄나 이적단체구성죄 역시 구성요건을 엄격히 하는 방향으로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가령 「이적(利敵)」의 개념을 「북한에 이로운 행위」를 「안보침해 행위」등으로 전환해 적용을 최소화 한다는 것. 국민회의는 당초 자민련의 반대로 포기했던 「민주질서 수호법」으로 대체입법하는 문제도 다시 검토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개정 또는 폐지라고 범위를 확장시켰기 때문에 논의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수(李相洙)제1정조위원장은 『7, 10조 문제는 개정이 확실하지만 나머지는 유동적』이라며 『김대통령 귀국 후 의중을 정확히 확인한 뒤 방향이 정해질 것』이라며 변화의 폭에 대해선 신중론을 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공동여당인 자민련과 한나라당의 반응이 뜨악하다. 『부분적으로 검토하자는 이야기일 것』(김종필·金鍾泌총리), 『대선후보 단일화 당시 일부 독소조항의 수정은 모르겠지만 기본골격은 바꾸지 않기로 양해된 사항』(자민련 김용환·金龍煥수석부총재) 등등. 한나라당도 『북한의 변화가 없는 한 국보법 개폐에 반대한다』는 논평을 냈다.
이같은 상황 탓에 정치권에선 국민회의가 국보법 손질을 밀어붙이더라도 일부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선을 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들이다.
/이태희기자 taehee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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