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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칼럼]이산가족 상봉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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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칼럼]이산가족 상봉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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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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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당국자간에 추진된다면 어느정도의 성과를 기대할수 있을까. 생사를 확인하고, 편지를 주고 받고, 정해진 장소에서 만나고, 우선 고령자들만이라도 남북 어디든 가족이 살고있는 곳에 가서 함께 살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산가족 문제의 마지막 목표라면, 시간이 얼마나 더 흘러야 가족합류가 가능할까.유감스럽게도 낙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산가족의 성격과 이산가족에 대한 인식이 남북에서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남한에 살고있는 이산가족들은 대부분 북에서 공산주의가 싫어 남하한 사람들이고, 일부는 공산주의자등 월북자의 가족이다.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의 절대다수는 월남한 「반역자」의 가족으로 핍박속에 살아왔거나 월남자 가족임을 숨겨온 사람들이다. 북한당국은 물론 월남자 가족들도 선뜻 상봉을 반길 상황이 아니다. 이산가족에 대한 인도적 관심도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를수밖에 없다.

북한이 당장 비료를 얻기위해서 이산가족 협상에 응한다해도 목적은 비료지 이산가족 상봉이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을 끌면서 비료만 챙기거나 극히 제한적인 상봉을 추진하다가 중단할 가능성이 높다.

판문점에 면회소를 만들고 지속적인 가족상봉이 이루어질수 있을것이라는 기대는 성급하다. 남한에 사는 가족들을 만나겠다고 나설수있는 북한 사람들의 숫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중국같은 곳에서 비공식적으로 은밀하게 가족을 만나는 것을 오히려 선호할 것이다.

「한국의 슈바이쳐」로 불렸던 장기려박사는 이산가족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살고 간 인물이다. 의사인 그는 6.25전쟁의 와중에서 아내와 5남매를 평양에 둔채 아들 하나와 잠시 남하했다가 이산가족이 됐고, 영세민을 위한 무료진료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며 독신으로 살았다.

미국에 사는 친척을 통해 북한의 가족과 편지를 교환하면서 이산가족 상봉의 날을 고대하던 그는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한채 지난 95년 86세로 눈을 감았다. 『통일될때까지 죽지말고 살아달라』는 아내의 육성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들으며 통곡했던 그 한많은 이산가족을 우리가 어떻게 잊겠는가.

제2, 제3의 수많은 장기려가 오늘도 이땅에서 눈물짓고 있다. 『통일될때까지 죽지말고 살아달라』는 기원을 생사도 모르는 가족에게 보내면서 마음으로 통곡하는 이산가족이 얼마나 많겠는가. 50여년동안 가족이 생사조차 알지못한채 헤어져 살아야 하는 비극이 한반도 이외에 어느나라에 또 있겠는가.

이산가족의 비극은 남북관계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여생이 길지않은 연로한 분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시간을 다투어 추진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제2, 제3의 장기려가 애타게 가족을 그리며 눈을 감는다고 생각하면 이산가족 상봉을 외면하는것은 범죄행위라는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정부는 좀 더 냉정하고 신중해야 한다. 북한의 입장이 어떻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정부가 조급하게 이산가족 문제에 매달리거나 희망사항에 가까운 예측으로 헛된 꿈을 부풀렸다가 또다시 이산가족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

비료지원과 이산가족 문제를 협의하기위해 베이징에서 열렸던 남북 차관급 회담은 결국 결렬됐다. 북한은 비료가 급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이산가족 문제에 접근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작년 4월 차관급회담에서도 비료 지원과 이산가족 문제를 연계시키려던 우리정부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정부는 이번 차관급 회담을 앞두고 『비공개 접촉에서 상당한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는 가을에는 이산가족 상봉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었다.

북한을 너무 모르기 때문인지, 햇볕정책의 성과를 기대하는 조급함 때문인지, 구체적으로 북한의 어떤 언질에 그같은 희망을 가졌던 것인지, 국민은 어이가 없다. 북한을 의심하면서도 정부의 낙관적 기대에 희망을 걸었던 이산가족들은 다시 실망에 빠졌다.

이렇게 되면 북한만 욕을 먹는것이 아니다. 남한 역시 허풍을 떤다든가 조급하다든가 북한을 너무 모른다는 식으로 신뢰를 잃어가고 있으니 그것이 걱정이다. 햇볕정책에 상처를 주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조급함과 허풍이라는 것을 직시해야한다. /본사주필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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