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벌고, 쓰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 가는 사람살이란 그리 달라질 게 없다. 쓰기 위해 벌기. 노동은 돈을, 소비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1년 여 전 나라 경제가 결딴날 지경에 몰린 뒤로 새삼 절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십 수년 몸담았던 직장에서 하루 아침에 쫓겨난 노동자들이 겪는 정신적인 낭패감, 패배의식, 공허감은 월급 봉투의 상실보다 훨씬 크다.「노동」은 지금 전세계가 맞닥뜨리는 가장 큰 사회문제의 하나다. 외환위기로 경제난을 겪는 우리나라는 공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정부가 노조 파업을 유도했다는 의혹을 사고, 인위적인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노동계의 투쟁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와 노사(勞使)가 한 자리에 모인 「노사정 위원회」는 오래 전에 「개점휴업」이다. 태국, 인도네시아 등도 우리와 사정이 별로 다르지 않다. 선진국도 오랫동안 높은 실업률로 고통을 겪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한 세기만에 컴퓨터 발달에 따라 노동시장이 대 변혁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다. 무수한 매듭으로 얽힌 노동의 문제를 푸는 해법은? 그리고 노동의 앞날은?
숙명여대 김장호 교수가 최근 펴낸 「한국노동경제론」(한길사 발행)은 80년대 이후 선진국에서 나타난 생산방식의 변화와 노동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검토하면서 고용안정을 위한 정책을 강조한 책. 김 교수는 구조조정과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개혁이 일정한 규모의 유연한 노동시장을 만들어내는데만 초점을 두는 것에 극력 반대하고 있다. 미국식 노동제도가 세계의 보편 모형일 수 없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효율성을 위해서는 적정한 수준의 고용안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구조조정기의 국가와 노동」(나무와숲 발행) 역시 노동개혁기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책을 쓴 한국노동연구원의 최영기, 이장원 연구위원은 노동시장의 재편을 위해 국가와 노동계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합의를 통해 실현해야 할 목표는 시장이 국가와 노동의 통제로부터 완전히 유리되어 강압으로 선택의 여지를 좁혀오기 전에 능동적으로 시장을 국가영역 안에 포섭하는 것. 책은 구조조정기 국가와 노동의 주요 사례로 이탈리아, 네덜란드, 멕시코, 호주, 영국, 뉴질랜드, 독일, 일본의 경험을 소개했다.
세계 50개국의 과학자, 경제학자, 사업가 등 100여 명을 회원으로 둔 로마클럽 보고서 「노동의 미래」(동녘 발행)는 실업 문제를 풀기 위한 처방을 담고 있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노동의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영리를 만들어내는 통상적인 노동만이 일자리가 아니라 가족, 공동체, 사회에서 지금까지 보수없이 이루어진 서비스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생산적인 활동을 일자리로 여기는 「서비스 사회」를 위한 정책이 제안되고 있다. 로마클럽은 정부가 노동에 대해 재정에서 지원하고, 끊임없이 창조적인 방식으로 고용의 틀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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