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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풍경] 길 떠나는 문학, 그속에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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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풍경] 길 떠나는 문학, 그속에 삶이 있다

입력
1999.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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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는 것은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한 작가(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법」)의 말처럼 「누구나 어디든지 마음대로 갈 수 있어서, 이제 변경이 사라져버린 시대」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 속에는 아직까지도 변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서정주의 시)일 때, 그 바람은 길 위에서 부는 바람이다. 「길이 끝나자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말의 의미는 바로 진정한 길떠나기는 자신의 마음 속의 오지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뜻일 것이다.그래서 여행의 가장 좋은 동반자는 지도이기보다는 한 권의 책일 것이다. 모든 문학은 길에서 시작해 길에서 끝난다. 자기 자신의 익숙한 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아가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고자 하는 이중의 욕망을 글로써 나타낸 것이 곧 문학이기 때문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등 우리 현대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명편들은 하나같이 길의 문학이다. 「무진기행」의 주인공 윤희중은 산업화의 초입에서 고향으로 돌아가 『한번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긍정하기로 하자』고 말한다. 산업화로 뿌리뽑힌 삶을 살았던 「삼포 가는 길」의 주인공 백화와 영달, 정씨는 자신들의 삶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 「삼포」를 찾아 눈보라치는 길을 떠난다. 「젊은 날의 초상」의 명훈은 동해안과 강원도로 이어지는 여행길을 통해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도전하고 피흘리는」 젊은 정신을 찾을 수 있었다.

최근에도 길을 찾는 글들은 이어져 나오고 있다. 연극평론가 안치운(40)씨는 몇년간 우리나라의 오지를 여행한 글들을 모은 「옛길」을 냈다. 『숲의 역사를 인간이 살아온 삶의 역사라고 한다면, 문명의 역사는 파괴된 숲의 역사』라는 그는 동강과 강원도 인제의 방태산, 소백과 태백 양백(兩白) 사이의 의풍리 등을 답사하며 우리 자연의 원형, 옛길을 찾고 있다.

이용한(31) 시인이 쓰고 심병우(35)씨가 사진을 모은 「사라져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는 우리에게도 이런 고향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그들은 오지를 찾아가는 것은 공간의 여행이 아니라 우리의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가는 시간여행이라고 일러준다. 「동강의 노루궁뎅이」는 동강에 관한 시인 소설가들의 작품과 산문을 모은 책.

「설악산은 어디로 가는가」와 「내 영혼이 꿈꾸는 섬」은 각각 여행과 섬을 주제로 한 테마문학 모음집이다. 우리 문인들은 여행의 의미를 어떻게 써왔고, 섬이라는 특정한 여행의 목적지를 어떻게 그려왔는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드문 자료집이기도 하다. 특히 둘 다 근대 이후 현재까지 한국여행문학의 목록을 수록하고 있어 큰 도움을 준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지난 5월에 나온 박흥식(53) 시인의 첫 시집 「아흐레 민박집」에 실린 시편들에서는 길 떠나기의 의미와 정서를 깊이 새겨볼 수 있다. 「이슬 내린 뜰팡서/촉촉이 젖어서 자던 신발들이 좋다/모래와 발바닥과 강물이 간지럽다/숙취 하나 없다/아침부터 마셔도 취하지 않는 이 바람/바람의 살/그 살결의 허릿매가 저리게 좋다/돌아갈 곳을 가로막는/파꽃 같은 이 집 돌아온 따님이/들어가 나오지 못하는 부끄러운 부엌/그 앞을 종일 햇살로 어정대서 좋다/안 떠나는 게 좋아서 아흐레 민박집」.

젊은 작가 윤대녕(38)씨의 소설집 「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에는 국내외 여행을 모티프로 우리 삶의 원형적 의미를 탐구한 작가의 눈을 통해 길떠나기와 우리 삶의 상관관계를 새삼 되짚어볼 수 있는 글들이 담겨있다.

혹시 올 여름 제주도를 찾을 요량이라면 현기영(57)씨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여행가방 속에 꾸려가는 게 어떨지. 한 제주 소년의 성장기를 통해 제주라는 땅의 의미, 우리가 자라난다는 것의 의미를 더없이 소중한 우리말로 그린 작품이다.

이희수(46)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20여년 이슬람 문화답사 경험이 담긴 「세계문화기행」과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50)의 여행에 대한 독특한 시선이 담긴 「하루키의 여행법」은 단순한 이국풍광 구경으로서의 해외여행이 아니라, 지구촌 인류의 삶과 문화를 보는 길눈을 틔워줄 수 있는 글이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추천 여행 신간 10선

책명 저자 출판사 분류

옛길 안치운 학고재 산문

사라져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 이용한 실천문학사 산문

동강의 노루궁뎅이 정 찬 외 베틀북 문학

설악산은 어디로 가는가 구효서 외 윤컴 문학

내 영혼이 꿈꾸는 섬 하근찬 외 윤컴 문학

아흐레 민박집 박흥식 창작과비평사 시

지상에 숟가락 하나 현기영 실천문학사 소설

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 윤대녕 생각의 나무 소설

세계문화기행 이희수 일빛 산문

하루키의 여행법 하루키 문학사상사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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