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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길 끝나는곳에 암자가 있다'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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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길 끝나는곳에 암자가 있다' 펴내

입력
1999.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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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나는 곳에 암자가 있다정찬주 지음

해들누리, 240쪽, 8,000원

불교 소설을 주로 써 온 정찬주씨가 여행기와 산문을 묶은 「길 끝나는 곳에 암자가 있다」를 펴냈다. 「시즌」이라고 여행지를 소개하고, 볼 거리 먹을 거리 잔뜩 늘어놓은 책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 책을 펴들고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잘 소비할까」에 끊임없이 몰두한다. 남보다 잘 쓰기 위해, 좀 더 멋지게 소비하기 위해.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무작정 소비하기 위해 준비된 여행기가 아니다. 정씨는 전국 도처의 숨은 암자를 다녀보고, 암자를 둘러싼 숲의 냄새와 암자가 디디고 선 땅의 촉감과 그 집에 얽힌 이야기들을 명상하듯 들려주고 있다.

꽃잎으로 눈을 씻는 법정스님의 불일암, 바다 안개도 쉬어가는 작은 섬의 송광암,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집의 영산암, 가랑비 속에 차향 그윽한 국사암, 마음으로 쌓는 남매탑의 상원암, 지리산 봉우리들이 한눈에 보이는 백장암, 다람쥐도 합장하는 운문사 사리암, 태백산 최고의 호젓한 자리 동암, 눈가루가 보석같은 설경 속의 태조암, 그밖에 마음을 밝혀주는 명상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정씨는 「암자는 나를 맞아 편안케 하는 어머니 같은 곳이자, 흐트러진 나를 추스리게 하는 침묵의 자리」라고 했다. 암자는 대부분 신도가 없기 때문에 가난하다. 시골에서 홀로 농사를 짓는 어머니 같은 모습도 있다. 조금은 외롭고 쓸쓸하여 산중의 때묻지 않은 고독이 가랑잎처럼 뒹구는 장소다. 그래서 「저잣거리의 편안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가랑잎 같은 고독을 친구삼아 자신의 질서를 지키며 수행하는 현장을 보면 가슴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정씨는 지금 실업자다. 지난해 십수 년 다니던 정든 직장을 놓았다. 「아내와 두 딸들이 불안해 하였다. 중학교 3학년인 작은 딸은 힘없는 말로 「이제 우리 집도 가난해지는 거야?」면서 학원 가는 날을 스스로 줄였다」. 사표를 던진 다음 날 그는 가방 속에 수건 한 장, 치약 칫솔 한 개만 달랑 담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그리고 암자를 향했다. 그래서 무엇을 얻었던가? 「오대산에 가면 상원사가 있고, 거기서 산자락 하나를 넘은 2.8㎞쯤 떨어진 깊은 산 속에 서대 염불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너와집 암자로 아주 작은 토굴인데, 그 입구에 우통수(于筒水)라는 조그만 옹달샘이 있다. 그 샘물이 한 방울 넘쳐 흘러 남한강이 되고, 도도한 한강이 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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