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 직전 당시 조선과 명(明), 일본 사이의 강화조약 체결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조선 사절단 부사(副使) 박홍장(朴弘長)의 일기 「동사록(東사錄)」이 일본 고서점에서 발견됐다.1596년 8월(음력) 정사(正使) 황신(黃愼) 등과 함께 일본을 방문한 박홍장이 50여일간의 일본 경험을 적은 「동사록」은 횡선이 그어진 한지 15장 분량으로 끝에 「읽을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자손이 다시 베껴 썼다」고 기록돼 있어 필사본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감정한 교리쓰(共立)여자대학 기타지마 만지(北島万次)교수는 『강화협상의 경위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재파병(정유재란) 의도 등을 해명하는 데 중요한 사료』라고 밝혔다.
「동사록」은 1596년 8월8일(음력) 부산을 출발, 쓰시마(對馬)와 시모노세키(下關), 효고(兵庫) 등을 거쳐 다음달인 윤 8월18일 오사카(大阪) 사카이(堺)에 도착했다고 적고 있다.
사카이에서의 강화협상은 조선의 황신, 명의 심유경(沈惟敬), 일본의 고니시를 수석 대표로 이뤄졌다. 그러나 볼모로 삼을 조선의 왕자가 오지 않은데 대해 도요토미가 격노, 교섭은 결렬되고 도요토미와의 회담도 불발한 채 조선 사절단은 9월10일 사카이를 떠나 귀국길에 올랐다고 적고 있다.
「동사록」은 정사 황신이 남긴 「일본왕환일기(日本往還日記)」의 기록과 날짜·장소·사건 등이 정확히 일치하나 「왕환일기」에 없는 새로운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조선 사절단에게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고니시 등 일본 무장들에 대한 인상, 당시의 「게이조(慶長) 대지진」의 피해상황과 2개월후의 여진(餘震)에 대한 전문 기록 등이 일본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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