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사람 하나 죽는 것엔 눈도 한 번 깜짝하지 않는다. 물론 영화 속에서다. 이처럼 점점 「살인 내성(耐性)」이 강해지는 관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영화 제작자들은 두가지 방법을 택했다. 하나는 「스크림」류의 슬래쉬(Slash)무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유가 없는 기계적인 살인을 통해 그 누구나 살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신세대의 행위를 통해 설명하는 것이다.또 하나의 방법은 잔혹을 「코믹」과 이종교배 시키는 것이다. 사람이 줄줄이 죽어가는 심각한 내용을 코미디란 가벼운 장르로 결합한 잔혹코미디는 근본적으로는 인간 심성에 내재된 악마적 본성에 호소한다. 그러나 그 형식은 코미디이기 때문에 보는 이에게 도덕적 죄의식이나 부담감을 강요하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 고안된 장르인 잔혹코미디가 국경을 초월해 인기 장르로 부상하고 있는 요인이다. 컬트 코미디가 지식인 감성에 호소한다면, 코믹잔혹극은 더 넓은 인기의 반경을 갖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원조는 「아담스 패밀리1」 「아담스 패밀리 2」. 91년 신예감독 배리 소넨펠드의 이 작품은 푸른 빛의 얼굴을 한 모르티샤 부인, 미치광이 박사인 남편, 그리고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고, 사람 머리가 날아가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아이들의 이미지로 화제가 됐던 작품. 공포스러운 이들의 생활은 지나친 현실과의 거리감으로 오히려 코믹하다. 잘린 손가락이 걸어다니는 우스꽝스런 분위기는 잔혹코미디의 원조답다.
그러나 잔혹코미디가 많이 나온 지난해부터는 「의도하지 않은」 살인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 우연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절묘한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시종일관 죽이고, 또 죽이는 구도다. 그래서 흥미롭다. 총각파티를 즐기려던 새신랑과 친구, 그리고 신부까지 가세해 돈을 놓고 한판 거대한 살인 게임을 벌이는 「베리 베드 씽」(피터 버그 감독)은 돈에 눈이 먼 신세대의 살인극이라는 점에서 「쉘로우 그레이브」와 흡사하다. 그러나 쉘로우 그레이브가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게 만든다면 이 영화는 그저 「다음엔 누구」라는 생각만을 갖게한다.
프랑스 영화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제임스 허스 감독) 역시 절묘한 우연이 만드는 연쇄 살인극을, 조 페시 주연의 「가방속의 여덟 머리」(톰 슐맨 감독·12일 출시 예정)는 8개의 잘린 머리 때문에 일어나는 소동을 그렸다.
우리 영화계에서도 잔혹코미디는 매력적 흥행 장르로 떠올랐다. 「아담스 패밀리」류의 분위기가 물씬한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 인육 자장면을 둘러싼 중국음식점 간의 전쟁을 그린 김성홍 감독의 「신장개업」 등은 우리나라 잔혹코미디를 개척한 영화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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