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 비세요. 환생을 하려거든 나무로 태어나라고 하세요. 내가 천년을 땅속에 묻혀 있던 지귀였으니 나무로 태어나라고 하세요』 죽은 조카 단종의 환영에 시달리던 세조. 내관 전균에게 기대어 승하한다. 옆에 있던 세자와 정희왕후 윤씨가 통곡한다.4일 방영되는 KBS 대하사극 「왕과 비」 111회. 이로써 98년 6월 6일 첫 방송된 이 드라마는 전반부를 마감하고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지금까지 문종의 요절에 이은 단종의 왕위계승, 피비린내 나는 계유정난을 거쳐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 수양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또한 왕위에 오른 세조의 단종 사사와 치적의 세월들도 역동적으로 묘사됐다.
드라마 초반 전편이었던 「용의 눈물」의 위세에 눌려 시청자의 눈길을 별로 잡지 못했다. 그러다 회를 거듭할수록 세조 역을 맡은 임동진의 선굵은 연기와 한명회 역의 최종원, 왕후 윤씨 한혜숙, 수빈 한씨(인수대비) 채시라 등의 열연이 다시 중장년층 남성들을 시청대열에 합류시켜 20% 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 역사서에 등장한 세조는 왕권에 눈이 멀어 간교한 한명회 등과 결탁, 조카 단종과 김종서, 황보인 등 정적을 무자비하게 제거하고 단종복위를 꾀하려던 성삼문 등 사육신을 죽인 권력욕의 화신이었다. 그러나 드라마 「왕과 비」는 세조를 다른 모습으로 평가했다. 세조의 집권을 왕권 강화로 해석하는 동시에 문무가 뛰어나고 냉철하고 이지적이면서 감성이 넘치는 인간으로서의 수양을 그렸다. 그래서 사학계 일부에서는 수양 미화와 역사왜곡이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작가 정하연의 반박이 이어졌다.
드라마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예종이 1년 2개월만에 죽고 나이 어린 성종이 등장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성종을 둘러싸고 섭정하려는 할머니 정희왕후 윤씨와 정치적이고 권력지향적인 어머니 인수대비의 갈등이 중심축.
윤용훈 PD는 『드라마 후반부는 조선시대 최초로 수렴청정을 하려는 윤씨와 조선시대 최고의 파워 여걸인 인수대비, 두 여성의 권력 암투가 노련한 두 연기자 한혜숙과 채시라에 의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KBS는 드라마의 진행상황과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올해 말로 종영 예정인 드라마를 내년 초까지 연장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