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9일 『러시아 방문후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국무위원들이 공동체 의식이 있고 난국타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질책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 정부에서 일하는 이상 국무위원들이 운명공동체로 국민 지지를 받고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김대통령은 특히 『문제는 부처에서 나오는데도 대통령이 해결하도록 맡기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적어도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우리는 아직도 깨끗하고 청렴한 정부가 되지 못했다는 비판을 안팎으로부터 받고 있다』면서 『정말로 뼈를 깎는 심정으로 부패구조를 혁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이 공직자와 민간기업의 부패때문에 철수할 정도」라는 보도와 관련, 『철저히 진상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최근 외신을 보면 한국 상황이 호전되면서 느슨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면서 『우리는 위기를 넘긴 것일뿐 21세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춘 게 아니므로 개혁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대국민사과에도 불구하고 국무위원들이 책임을 느끼며 자세를 가다듬는 분위기가 나타나지 않는데 대한 질책이자, 향후 국정운영의 중심축을 개혁과 부패척결에 두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는 김대통령이 최근의 난국을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피력으로 볼 수 있다. 옷 사건으로 떠난 민심을 강도높은 개혁으로 되찾고, 파업유도 의혹으로 들끓는 노동계는 서민·중산층 대책으로 끌어안겠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구속자 석방이나 수배자 해제, 지역개발 공약 등으로 노동계나 민심에 접근하는 우회적 태도는 취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대통령은 정공법이 성공하려면 각료들의 주인의식이 필수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눈에는 각료들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여론의 비난을 온통 혼자 맞으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 것 같다. 공동체의식을 강조한데서는 각료나 참모들의 충성심에 대한 회의감도 엿보인다. 김대통령이 주변에 『몸을 던지는 인재가 아쉽다』고 토로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고독」은 자신이 초래한 측면도 있다. 정치에서 경제, 사회·문화에 이르기까지 김대통령이 방향은 물론 각론까지 지시한다. 각료들이 활동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당장 재벌의 제2금융권 장악을 개혁한다는 발표도 재경부나 금감위가 아닌 김대통령과 청와대가 했다. 지금이 비상상황이어서 김대통령이 직접 나섰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모든 것을 도맡으면 각료들은 손을 놓는다는 것은 이 정부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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