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386」들의 목소리가 시골 동네의 확성기 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에 입학한 30대. 청춘을 정치사회적 상황에 저당잡혔지만 그 고통의 터널을 지나 젊음이 가기 전에 뺏겼던 몫을 되찾을 기회를 얻은 사람들.대중문화의 힘과 정치적 수혈(輸血), 언론의 관심에 의해 이제는 새로운 권력층으로 발돋움하는 선택받은 세대. 『나는 나』일 뿐 아니라 『내가 세상』이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당돌한 개성.
그러면 40대는? 30대의 그늘에 가려진 듯한 「475 세대」. 더이상 「젊은 피」 대접도 못받고 50대처럼 안정되지도 못한 「끼인」세대. 가장 열심히 뛰었으면서도 어려운 경제상황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된 「상실 세대」.
그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이유가 있는가? 30대처럼 모든 현장에 존재하고, 오히려 그들보다 더 두터운 사회적 계층을 이루고 있는 그들의 문화는? 힘은?
475세대의 자리는
컴퓨터 통신에서 떠도는 우스개. 「관심사?」. 20대 「나의 피앙세는 누굴까?」, 30대 「내년 물가는 어떨까?」, 40대 「다음 퇴직자는 누굴까?」.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부터 사라호 태풍의 위력에 가슴 졸였던 1959년 사이에 태어나 70년대 대학에 들어가 유신체제에 몸서리쳤고, 그 어둠을 밝히려고 애썼던 사람들.
40대는 어느 세대보다 「생활」이라는 그물에 단단히 얽매어 있다.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한창 먹고, 공부할 나이의 자식들과 늙어가는 부모를 봉양할 나이. 40대의 짐은 무겁다.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은 늙어감에 대한 두려움보다 훨씬 무섭다. 신문 사회면 귀퉁이에 실리는 생계비관형 자살의 주인공들. 지나간 대중가요의 후렴같은, 낡았지만 너무도 절박한 현실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공의 희생자
「퇴출 1순위」. 국제통화기금(IMF) 지원 이후 쏟아지기 시작한 실업자의 대열은 40대의 물결로 넘쳐났다. 실업자가 한창 쏟아지고 있던 지난해 1∼4월 통계청의 실업동향 분석에 따르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실업증가율이 가장 높은 연령층은 45∼49세였다. 40대의 신규 실업자 20만 1,000명. 전년도의 3배.
누군가는 40대를 「보릿고개의 마지막 세대면서 정리해고의 1세대」라고 불렀다. 또 「주산의 마지막 세대」며 「컴퓨터 문맹의 1세대」라고도 한다. 구세대에 편승하기에는 너무 젊고, 신세대와 어울리기에는 「기성복」을 걸친.
그들은 무능력한 걸까? 박정희 개발독재체제의 가장 낮은 곳에서 야근과 특근을 마다 않고, 묵묵히 땀과 지식을 쏟아부어 「한강의 기적」에 일조한 사람들. 그러면서도 유신의 체제에 항거해 꿈틀거렸고, 87년에는 「넥타이 부대」가 되어 6·29 선언을 이끌어낸 저력을 가진 세대가 40대다. 이렇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과연 그들은 그만한 희생의 보상을 받고 있는가라고.
40대, 골든 제너레이션
사회가 그들을 내팽겨쳤다고 잘라 말하기는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그들에게도 책임은 있다. 가장 정력적으로 일할 나이면서 가장 고급한, 광범한 문화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는 특권을 그들은 누릴 수 있다. 경제의 그물에 얽매였지만 쌓아 놓은 부(富)에 기대어 웬만큼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세대가 또 그들이다. 그들은 10대와 20대의 요란한 몸부림에 짓눌려, 30대의 당당한 외침에 주눅들어 그들이 향유할 문화의 「코드」를 찾지 못하고 있다. 고작 향수에 기대어 포크 음악회장에 문전성시를 이루는 정도랄까.
그래서 26일 저녁 서울 하얏트호텔서 열렸던 한 재즈 음악회를 주목할만하다. 치과의사 민병진(47·서울치과병원장)씨. 문화를 사랑하는 40대의 모임을 결성,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라는 모임을 이날 가졌다. 그는 이날 700여 명의 청중들과 노래를 부르고 40대 제자리 찾기 선언을 했다. 『40대는 한국의 고속성장의 주역이지만 그들의 문화나 정신세계를 만들지 못했다. 그것은 우리사회의 공동책임이다』 민원장은 지금이라도 그것을 만들어야겠다고 말했다. 왜? 생활에만 얽매여 그냥 굴러가기에는 인생이 너무도 아깝기 때문이다. 『지금 평균 수명은 70대다. 지금 40대가 그 나이가 될 때는 의료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10∼20년 더 연장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지금의 40대는 인생의 한 가운데, 황금기에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는 40대를 「황금 세대(Golden Generation)」라고 이름붙였다. 40대의 원숙미와 경륜, 경제력을 자신하므로.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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