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이 보편화한 99년에도 「노랑 머리」는 다분히 도발적이다. 그것은 「검은 머리」의 기성사회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자 거부의 선언으로 비친다.영화 「노랑 머리」(김유민 감독 데뷔작)는 노랑 머리에 대한 터부만큼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다. 머리를 샛노랗게 물들이고 테크노카페에서 돌아다니는 유나와 상희. 둘은 금융사고로 직장을 잃은 전 증권맨 영규를 카페에서 만나 서울 외곽의 창고로 데려가 동거를 시작한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섹스를 하고, 또 섹스를 하고, 또 섹스를 한다. 그들에게 섹스는 유일한 소통의 수단이자 존재의 증명 언어다.
영규와 온 몸을 바쳐 섹스를 나누는 유나와, 유나를 「사랑」하는 상희의 동조 섹스, 그러나 영규는 이것을 사랑이라 믿지 않고 금융사고로 쫓겨난 증권사의 옛 동료 은미의 주위를 맴돈다. 유나와 상희는 은미를 죽이고, 마침내 영규마저 죽인다. 이들의 섹스 장면은 노골적이다. 그저 옷을 벗고 다짜고짜 섹스를 시작하고, 카메라는 그 어떤 영상적 테크닉 대신 그저 부둥켜 안은 그들의 몸을 보여준다.
당초의 광고문구 「입 닥치고 섹스나 해」는 「입 닥치고 보기나 해」로 바뀌었다. 대부분의 성고발 프로그램이 「고발」은 뒷전이고, 그것을 빌미로 「실상」만을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업적 배려는 곳곳에 보인다. 이불 속에서의 섹스는 외국영화의 로맨틱한 섹스장면에 흔히 쓰이는 기법. 그러나 이런 어설픈 흉내내기는 오히려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무작정 섹스에 탐닉하는 것을 소외된 군상의 자학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것의 대안으로 동성애를 제안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짐은 물론 신선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같은 종류의 B급 에로물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개봉된다. 영화 사상 처음으로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1차 심의가 반려됐다 20일 2차 심의에서 18세미만 관람불가로 통과됐다.
섹스영화에 이보다 더 화려한 「마케팅」 기법이 동원될 수 있을까. 「창작의 자유」라는 감독의 의지를 인정하더라도, 이 영화는 극장을 관음의 장소로 만드는데 일조할 뿐이다. 이 영화가 홍보문안 대로 「세기말적 쇼크에 관한 보고서」라면 그 보고서의 핵심인 두 남자와 한 여자의 혼음장면을 겹쳐 처리, 심의 통과에만 급급할 수 있었을까.
드라마 「토지」에서 서희 역을 맡았던 아역배우 출신의 이재은, 연극배우 김기연, 그룹 「신촌블루스」의 보컬인 아마추어 김형철이 주연을 맡았다. 26일 개봉. ★★☆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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