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숙(孫淑)환경부장관의 퇴진으로 여성장관들의 「불운」이 다시 화제에 올랐다. 여성의 내각 진출은 김영삼(金泳三)정부 때부터 본격화 했지만 대부분의 여성장관은 단명했고 물러나는 모양새도 아름답지 못했다.정부수립 이후 지금까지 여성장관은 모두 22명. 48년8월 상공부장관이 된 임영신(任永信)씨가 첫 여성장관이었다. 2, 3공화국에서는 단 한 명도 없었고 25년의 공백 끝에 79년 12월 김옥길(金玉吉)씨가 문교부장관이 됐다.
김영삼(金泳三)정부 때 장관자리에 오른 여성은 권영자(權英子)씨등 정무제2장관을 지낸 4명을 비롯해 황산성(黃山城·환경부) 박양실(朴양實) 송정숙(宋貞淑·이상 보건사회부) 김숙희(金淑喜·교육부)씨 등 모두 8명.
입각하자마자 부동산 투기 의혹에 시달렸던 박양실씨는 단 열흘만에 손을 들었다. 뒤이은 송정숙씨도 한·약분쟁의 파고를 넘지못해 9개월만에 주저앉았다. 직선적인 언동으로 수차례 파열음을 냈던 황산성씨도 10개월만에 장관자리를 내놓았다.
김숙희씨는 비교적 긴 기간(93년12월~95년5월) 교육부장관을 지냈지만 그 역시 명예로운 퇴진은 아니었다. 소문난 강골(强骨)이었던 김씨는 『월남 파병은 용병』이라는 발언의 파문을 끝내 견디지 못했다.
여성장관의 불운은 김대중(金大中)정부 때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주양자(朱良子)보건복지부장관은 56일만에 중도하차했다. 박양실씨처럼 부동산 투기가 문제가 됐다. 바통을 받은 김모임(金慕妊)씨는 국민연금 파동 끝에 옷을 벗었다.
5공화국때 보건사회부장관(82년5월~85년5월)을 지낸 김정례(金正禮)씨, 끊이지 않은 경질설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틴 김대중정부 1기내각의 신낙균(申樂均·문화관광부)씨만이 「불명예퇴진 여성장관」에서 벗어났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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