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리스트 괴질(怪疾)에 시달리고 있다. 각종 정치 현안이 터질 때마다 거의 예외없이 여의도 일대에 유포되는 출처불명의 리스트들은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호사가들의 구미를 자극하고, 이것이 구전이나 문서 형태로 퍼지며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이형자리스트 가장 최근의 베스트 셀러 괴문서는 「이형자리스트」. 이 리스트의 주요 내용은 『모 미대 대학원 출신으로 보석과 골동품에 일가견이 있는 신동아그룹 최순영(崔淳永)회장의 부인 이형자(李馨子)씨가 현 여권 최고위층의 부인에게 1억원대의 고 미술품을 제공했고, 전직 장관 부인 B씨에게 1억원대 골동품과 사파이어 세트를 상납했으며, 현직 장관 P씨에게 5,000만원대의 고 미술품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 리스트에는 또 고급 옷 뇌물 의혹 사건과 관련, 문제가 됐던 인사들 외에 현직 권력기관장 C씨, 전직 고위기관장 L씨, 전직장관 P씨, 청와대 핵심실세 K씨, 지방자치단체장 L씨의 부인과, 여권 최고위층 부인 L씨와 P씨 등 7명의 명단이 함께 올라 있다.
꽤 오래전부터 정치권 주변에 나돌았던 「이형자리스트」에 새삼 세간의 관심이 쏠리게 된 것은, 최회장 부부가 구속 수개월전 수십억원대의 고서화를 매입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고 나서부터. 최씨 부부의 고서화 구입과 리스트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음에도「그림」이라는 공통요소 때문에 『리스트가 헛 소문은 아니었구나』하는 심증들을 심어주게 된 것이다.
최순영리스트 이형자리스트가 루머시장을 석권하기 직전에는 다양한 판형의 「최순영리스트」가 국회 의원회관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유포돼 있었다. 이형자리스트가 비교적 단순한 내용이었던데 비해 최순영리스트는 난삽하다 할 정도로 내용이 복잡했다. 줄잡아 3개 정도의 「버전」으로 유통된 이 리스트에는 과거 정권과 현 정권의 핵심실세,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측근 등이 굴비두름 엮듯 올라 있다.
최초의 버전에는 전 정권에서 잘 나갔던 K, H의원과 S전의원, 국민회의 S, K의원과 P장관 및 L지사, 자민련 K의원, 언론인 K씨와 또 다른 K씨, 전직 은행장 C씨 등 11명의 이름만 적혀있었으나, 두번째 버전에는 이회창총재의 측근까지 망라된 정치권 14명 관계 6명 재계 3명 언론계 7명 등이 등재됐다. 세번째는 A4용지 3매 분량의 「서술형」 버전으로, 면면이 엮이게 된 과정까지 기술돼 있다. 『L장관은 최회장과 같은 선교회 교인으로 최회장의 외화도피를 비호했다』『P전의원은 최회장과 사돈관계로 로비의 최전방을 담당했다』는 식이다.
그밖의 리스트 현 정권들어 정치권에 나돈 리스트의 종류만 해도 33가지에 이른다. 가깝게는 원철희리스트와 제2사정 리스트가 있고, 유명 리스트로는 정태수리스트와 김선홍리스트가 있다. 리스트는 아니지만 한나라당 이기택(李基澤)고문의 부인 이경의(李慶儀)씨의 호소편지로 촉발된 「몸통설」, 최회장이 구속되기 직전 검찰 최고위 인사와 통화한 내용이 담긴 테이프를 최회장 가족이 확보하고 있다는 「녹음 테이프설」등도 있다. /홍희곤기자 h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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