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누구를 위해 어떻게 움직이나더그 헨우드 지음, 이주명 옮김
사계절, 540쪽, 1만 3,000원
「일본과 유럽은 갈수록 미국처럼 돼가는 운명인지 모른다. 유럽의 통화동맹도 분명 그런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무엇이 더 잘 기능하는가』는 논쟁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리고 미국식 시스템이 잘 기능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과연 무엇에 대해 잘 기능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월스트리트. 미국 금융의 중심지며, 세계 경제의 권부(權府). 무너진 금융장벽을 넘어 투자와 투기의 제어할 수 없는 흐름을 만들어내는 곳. 경제위기에 빠진 한국을 포함한 동남아, 남미 여러 나라에 자유시장경제, 선진금융의 논리를 전파하는 선진 금융의 전당. 유럽이나 일본처럼 한국도 이곳의 생리와 법칙을 알아야 하고, 닮아가야 하는 것이 「숙명」인지 모른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의 논리를 익히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금융 권력의 장밋빛 미래는 있는지,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깨닫는 일이다.
더그 헨우드는 뉴욕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언론인. 예일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 논문을 쓰다 그만 두고 파생상품을 다루는 조그만 증권회사에 취직하면서 월스트리트에 발을 디딘 이채로운 경력의 인물이다. 얼마 뒤 회사도 그만 두고 언론인으로 변신했다. 자신의 뉴스레터인 「레프트 비즈니스 옵서버」를 발간하고 정치와 경제문제를 주로 다루는 웹 사이트(www.panix.com/~dhenwood)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좌파의 시각을 폭넓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비판적인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누구를 위해 어떻게 움직이나」는 금융산업의 비대한 팽창, 미국식 경제의 전지구적인 확산에 대한 경고를 담은 책이다.
헨우드는 주식, 채권, 파생상품, 펀드, 통화 등 금융상품에서 금융과 실물경제, 기업경영, 정부의 거시경제정책에 이르기까지 현실경제 이해에 필요한 지식을 월스트리트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경제학자 민스키를 바탕으로 금융구조를 위험회피형, 투기형, 폰지형(키워드 참고)으로 나눈 그는 경제가 위험회피형→투기형→폰지형으로 움직인다고 분석했다. 헨우드는 80년대 미국 경제가 의심할 바 없이 대공황에 임박한 폰지형으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다만 과거와 달리 국가의 개입이 최악의 상황을 막고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또 소액주주운동 사회적 투자(반사회적 기업주식에 투자하지 않는 행위)의 효과, 월스트리트 금융권력을 제한하고 거대기업을 감시하며 기업과 금융의 지배구조를 민주화하는 방법도 책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헨우드는 미국의 금융산업이 문화를 탐욕스럽고 원자화한, 그리고 극단적이고 불안정하며 때로는 폭력적인 경쟁관계로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런 것을 성공이라 부른다면, 미국 모형은 대성공을 거뒀고 다른 나라도 이 모형을 복사해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독설이지만 또 교훈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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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지(Ponzi)형 경제구조는 1920년 미국 보스턴의 금융 사기꾼 찰스 폰지의 금융게임에서 유래한 말. 그는 자신의 게임에 처음 참여하는 투자자 집단에게 높은 수익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잇따라 들어온 두 번째 투자자 집단으로부터 거둔 돈으로 첫 번째 투자자 집단에 이 고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세 번째, 네 번째 투자자 집단을 계속 모집한다. 결국에는 더 이상 충분한 투자자 집단을 끌어들일 수 없고, 한순간 투자 게임은 무너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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