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옷 로비 의혹의 숨겨진 몸통이라고 주장해온 「그림 로비」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이 구속되기 두달전 운보 김기창화백의 동양화 60억원 어치를 사들인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250점이나 되는 그림의 행방은 드러나지 않았으나, 정치권 로비에 이용했으리라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이 문제는 이미 정치 현안이 돼 있다. 한나라당 이신범의원이 18일 국회 본회의 질문에서 「최회장 부인이 고위층 부인들에게 1억원대 고미술품과 옷을 선물했다」는 시중의 소문을 거론하자 국민회의가 명예훼손을 이유로 국회 윤리위에 이의원을 제소하기로 한 마당이다.
섣불리 예단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림들이 만일 정치권 로비에 사용됐다면 그 폭발력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장관 퇴진 정도가 아니라 정치권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가능성마저 있다.
최회장 부부와 관련해 끈질기게 나도는 로비설을 마냥 유언비어로 치부할 단계는 지났다. 오히려 여러 의혹을 둘러싼 정치공방에 따른 국정 혼란과 민심 이반에서 벗어나려면 이번에야말로 의혹의 실체를 투명하게 국민앞에 밝혀야 한다.
그림 로비 의혹을 심상치않게 보는 근거가운데 하나는 최회장이 구속되기 직전 그림을 60억원어치나 구입했다는 사실 자체다. 미술관을 만든다거나, 운보쪽에서 먼저 구입을 제의했다는 얘기 등은 한가하고 주변적이다.
그룹이 파산 직전이고 외화도피 혐의로 사법처리될 위기에 있던 최회장이 수십억원을 투자했다면 다급한 상황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봐야 옳을 것이다. 일부 추측대로 재산 은닉을 위해서라고 보기도 어렵다. 최회장과 같은 처지에서 그림 수백점으로 재산을 빼돌린다는 것은 너무 허술하다. 신동아그룹과 자신의 운명에 영향력을 가진 정치권과 정부 실력자들을 상대로 로비를 하려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된다.
청와대 사정팀은 옷 로비 의혹을 조사할때 그림 구입 사실을 확인했으나 『그림이 모두 회사에 보관돼 있다』는 말을 듣고 더이상 조사하지 않았다고 한다.
옷 로비 의혹은 검찰 발표처럼 「지각없는 부인네들과 장사치의 농간이 어울린 스캔들」로 간주하더라도, 60억원어치 그림 구입 건은 그 정도에서 덮을 사안이 아니다. 뇌물제공 혐의가 아니라도 재산도피나 세금포탈 의혹이 뚜렷한 사안을 지금껏 덮어둔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해명해야 한다.
정치권은 옷과 그림 로비 의혹을 밝히자고 다시 지루한 정쟁을 벌일 것이다. 정부는 정쟁에 밀려갈 것이 아니라 먼저 청와대 사정팀의 내사내용부터 공개하고, 그림들을 과연 회사가 보관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한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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