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종 소리에 몸을 일으키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일요일 아침. 마음껏 게으름을 피워보는 시간이 오랜만에 찾아왔다. 물론 이 시간에도 부지런한 아내는 밖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아내는 함께 지나온 십여년의 시간속에서 서로의 역사가 되고 사상이 되고 가치관이 되어왔던 동갑나기 친구다.방안엔 넓은 자리를 돌아다니면서 잠자는 두 아이가 있다. 지금 나는 아이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이 아이들이 꿈과 이상을 이야기할 때 아내와 내가 대화하듯 서로 같은 눈높이로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조그마한 중소기업에서 벤처정신으로 열심히 살고있는 중견 회사원이다. 평범한 보통 사람, 386세대의 전형인 나의 일상 중에 가끔 찾아오는 자유로운 묵상은 그 자체로서도 기쁨이다.
80년대에는 나이와 사회적 위치를 뛰어넘어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과 꿈을 함께 했었다. 요즘엔 생활 속에서 원칙을 놓쳐 버린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애정, 민주적인 조직의 원칙을 잠시 잊은 건 아닌지, 독단적인 결정은 없었는지, 자족감에 빠져서 사람과 조직에 대한 원칙을 생활 속에서 지키지 못한 것은 아닌지.
4·19혁명의 주역인 아버지 세대와 식민지와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할아버지 세대가 우리 세대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원인은 원칙의 혼란이다. 새로운 사회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원칙, 나이와 사회적 위치를 넘어 함께 나눌 수 있는 기본이 혼란을 겪었다.
기본적인 원칙을 일상 속에서 지키지 못하고 변질시켜버린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4·19세대가 잃어버린 이상과 꿈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386세대에겐 중요한 교훈이 된다.
10년 후의 사회와 내 모습을 생각해 보는 정도의 꿈과 이상은 가져야 한다. 40대가 되어도 지금같은 386세대의 열린 사고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나는 486, 586세대가 되어도 정의와 진실을 위해 밤새 격분을 토했던 386의 모습 그대로 내 아이들의 이상과 꿈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눌 때 서로를 공감하듯이 말이다.
/이재철·세진T&M 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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