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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사람들] 스튜디오 운영 이보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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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사람들] 스튜디오 운영 이보라씨

입력
1999.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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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바이올렛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이보라(31)씨는 요즘 매달 1,3주 수요일이면 가게 문을 닫고 「특별외근」을 나간다.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을 찾아 무료 영정(影幀)사진을 찍어주기 위해서다. 16일에도 그는 어김없이 큼직한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할머니, 이렇게 무스를 살짝 바르니까 훨씬 예뻐보이시네요』 『할아버지, 활짝 좀 웃어보세요. 아, 조금 전 그 표정 아주 좋습니다』

이날 그는 일원동을 비롯, 4개동을 돌았다. 저소득층이 밀집한 지역이라 평소의 두 배가 넘는 550여명이 몰려 오후 늦게까지 강행군을 해야했지만 바쁘게 셔터를 눌러대는 이씨의 표정에서 피곤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늘 주변의 도움을 받고 사는 게 부끄러워 남에게 도움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는 그는 지난 석달간 19개동을 돌며 800여명에게 사진을 찍어줬다.

『부자동네라는 강남에도 의외로 어려운 분들이 많더군요. 「나중에 돈 달라는 것 아니냐」며 따져대는 분들이 적잖아 속이 상하다가도 수고한다며 쑥떡보따리를 건네고 쌈짓돈 털어 밥을 사주는 분들 덕에 기운을 내곤 합니다』

어릴적부터 사진찍기를 좋아했다는 이씨는 고교 졸업후 충무로의 한 슬라이드 현상소에서 2년간 일하다 재수끝에 93년 경원전문대 사진영상학과에 입학했다. 전공은 인물사진. 그는 『사람의 얼굴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소재는 없다』며 『특히 본인도 느끼지 못하는 그만의 매력을 렌즈로 잡아내 보여주고, 무척 기뻐하는 모습을 대할 때가 가장 즐겁다』고 말한다.

이씨는 졸업후 스튜디오에 취직했다가 부당한 대우에 반발, 사표를 던진 뒤 내친 김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차렸다. 단돈 500만원으로 창업을 감행한 그에게 대학 은사는 부족한 임대보증금 500만원과 장비 일체를 빌려주었고, 친구와 선후배들도 허름한 지하창고의 페인트칠을 도왔다. 맨손으로 시작한 그가 의류 카탈로그 전문사진작가로 기반을 잡는데도 그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이씨는 당초 계획한 1,600여명의 영정사진 촬영을 이달말로 끝내고 나면 장애인들을 찾아 나설 작정이다. 『사진찍기를 꺼리는 장애인들도 예쁘게 찍힌 자신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기쁨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살아가며 받은 도움을 잊지 않고 되갚을 줄 아는 이씨의 고운 마음씨에서 그의 이름처럼 진한 향기가 느껴진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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