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신들의 조각상과 로마시대의 뛰어난 조상도 많이 보았지만 모든 것에 아직 완전히 초극되지 않은 지상적·인간적인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미륵상에는 실로 완성된 인간실존의 최고 이념이 남김없이 표현돼 있습니다.지상에 있는 모든 시간과 속박을 초월해 도달한 가장 청정한, 가장 원만한, 가장 영원한 모습의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처럼 평화스런 모습을 구현한 예술품을 본 적이 없습니다』
■독일의 실존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일본 국보 1호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보고 한 찬사이다. 교토의 고찰 고류지(廣隆寺)에 있는 이 미륵상은 목제 조각품인데, 눈을 내리뜨고 조용히 웃는 모습이 너무 신비로워 「절대의 미소」로 평가되기도 한다. 가늘게 뜬 눈과 온유한 눈썹선, 오똑한 콧날, 단정한 입매와 너그러운 얼굴윤곽에 서린 미소는 모든 근심과 욕망과 본능을 초극한 도솔천의 세상에나 있을 법하게 느껴진다.
■이 작품은 우리 국보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국보 83호)과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해서 큰 화제가 됐다. 한일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일본에서 열린 한국미술 5,000년전에 출품된 우리 미륵상의 표정,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에 올려놓고 앉아 오른 손을 뺨에 살짝 갖다댄 자세, 좌대의 모양까지 빼다 박은 듯 일본 것과 닮은 데 놀란 것이다. 그 후 이 미소에 반한 관광객이 미륵상을 포옹하다가 쓰러뜨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륵상의 소재가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적송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신라인의 작품이라는 학설에 무게가 실리게 됐다. 이번에는 우리 미륵상이 유럽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며칠전 독일 에센에서 개막된 한국유물전에는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을 비롯한 우리 국보 25점 등 문화재 325점이 출품됐다. 현세의 인물에게는 존재할 수 없는 미소로 보았던 독일인들이 쌍둥이 미륵상을 어떻게 평할지 궁금하다. 동족간에 총질을 하는 어지러운 시대에는 더욱 그리워지는 미소다.
/문창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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