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익명의 주거환경에 개설 불어넣기 -아파트를 색으로 비유한다면 회색일 것이고, 모양으로 본다면 성냥갑을 떠올릴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나만의 집, 개성적인 주거공간이란 오로지 숫자로만 기억되고 인식될 뿐이다. 익명의 도시, 익명의 주거환경인 셈이다.
「발코니에 노란 해바라기가 있는 집이 우리집이야」라고 하는 것이 「OO동 XX호」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정감있고 부드러워 보이지 않는가. 꼭꼭 닫힌 발코니 문을 녹색의 공간으로 바꾸어 열고 회색의 육중한 현관문을 밝고 예쁘게 꾸며보자.
발코니(베란다) 공간을 가족 꽃밭으로 가꾸고 활짝 문을 열어 꽃담으로 만들자. 우리 꽃과 들풀이 무성한 가운데 옹기종기 앉아있는 항아리며 옹기를 생각해보자.
발코니를 타고 오르는 덩굴 식물 속에 고개를 내민 우리꽃과 작은 사랑을 나누자. 발코니 공간을 아름다운 자연으로 가꾸고 열어 놓는다면 회색의 도시, 무감각한 공간을 생기있는 공간으로 바꾸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발코니를 개성있는 공간으로 가꾸었다면 이제 문패달기 운동을 시작하자. 이와 더불어 아이들과 함께 페인트를 섞어 예쁜 색의 현관 문을 만들자. 개성적인 현관을 꾸미자. 우리의 정서상 문패는 곧 가족을 의미했고, 가문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문패를 단 문은 곧 집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상징하고, 집을 수리할 때면 문패도 새 것으로 바꾸어 달았다. 이러던 우리네 일상은 아파트가 보편적인 도시형 주택으로 자리잡으며 문패를 다는 일이 언제였나는 듯 없어지고 말았다.
대학생들이 학교 배지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던 시절이 먼 기억 속에 파묻힌 것처럼 말이다. 아파트가 건설업체의 선전장으로 전락하고 한 가족의 생활공간인 집이 숫자로 상징되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 숫자속의 익명(匿名)을 즐기려는 심리가 팽배하게 된 것이다.
애정없이 붙여지는 숫자보다는 사랑스런 가족의 이름과 가족들의 쉼터를 나타낼 수 있는 문패를 다는 일은 획일적인 아파트 생활문화에 대항하는 일이며, 익명의 도시에서 자아를 찾는 일이다. 표정없는 아파트에 문패를 달자. 개성적인 나만의 공간으로 바꾸어 가자.
한국일보사와 여성건축가협회의 공동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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