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옥신 파동이 벨기에 정치판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13일 실시된 총선에서 장 뤽 드하네(58·사진) 총리가 이끄는 집권 중도좌파 연정이 참패를 면치못해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온건좌파 천하가 뒤집어지게 됐다.개표가 86% 진행된 14일 오후 현재 집권연정은 총 150석의 하원에서 65석을 얻는데 그쳤다. 드하네 총리의 기독교 민주당은 현의석에서 9석을 잃어 32석, 연정파트너인 사회당은 8석이 줄어든 33석을 각각 얻어 소수세력으로 전락했다.
반면 우파정당 연합인 네덜란드어권 자민당과 프랑스어권 자유당은 2석을 늘린 41석을 획득, 원내 제1세력으로 등장해 조각권을 갖게 됐다. 환경보호를 간판으로 내건 녹색당도 20석을 얻어 9석을 보태는 대약진세를 보였다.
드하네 총리는 개표초반 패배를 선언하며 『새롭고 젊은 세대에게 당권을 이양하겠다』면서 사임했다. 8년간 집권으로 유럽 최장수 현직총리의 기록을 갖고 있는 그가 3기연속 집권의 문턱에서 좌절하는 순간이었다. 아울러 그는 92년간에 이르는 중도좌파 정권의 마지막 총리로 기록될 것이다.
드하네 정권의 최대 패인은 다이옥신 파문. 총선 2주전에 터진 다이옥신 파동은 당초 지지자의 29%를 집권연정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농업국가인 벨기에에서 8억5,000만달러의 경제적 피해와 대외신인도 추락을 초래한 마당에 집권당의 총선승리는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다.
드하네 정권의 통치력과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회의는 지난 4년간 끝임없이 그를 괴롭혀 왔다. 지난해 4월에는 악명높은 유괴살해범의 탈옥사건으로 의회에 의한 정부 불신임투표를 치렀으며 그에 앞서 어린이 연쇄 유괴살해, 정계인사들이 다수 연루된 군납비리 등으로 국민적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이번 선거결과는 단순히 정치판의 변동으로만 그치지는 않을 전망이다. 사회보장 정책과 연방_지방정부간 관계에 있어 자유주의 노선을 강조하는 우파의 입김이 커지면서 기존의 정책구도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부유한 북부 네덜란드어권의 분리독립과 이민규제 등 인종차별 정책을 내건 극우 블람스 블록이 총 15석으로 4석을 추가한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21세기 목전에서 벨기에는 한차례 커다란 변동을 경험하고 있다.
파리=송태권특파원 tg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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