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을 아주 심각한 중대사안으로 판단, 무겁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김대통령이 9일 김영배(金令培)국민회의 총재대행을 청와대로 불러 국정조사 수용을, 김정길(金正吉)법무장관에게 「철저한 재조사」를 지시한데서 절박한 상황인식이 드러나고 있다.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을 빌리면 옷 사건은 국민 정서의 문제이지만 파업유도 의혹은 정통성의 문제이다. 파업유도 의혹의 전말이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법집행 기관의 권위가 추락함은 물론 현 정부의 존립 기반마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지지세력인 노동계, 서민층이 이반하고 있다. 김중권(金重權) 청와대 비서실장이 8일 『진형구(秦炯九)전대검 공안부장의 취중 실언으로 재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밝힌데 대해 노동계의 거센 반발, 국민의 싸늘한 시선이 쏟아졌다. 옷 사건으로 흔들리는 민심이 파업유도 의혹으로 아예 떠날 조짐을 보였다. 김대통령은 8일 저녁 의혹과 비판의 소리를 전한 조간신문 가판을 보며 이른바 정면돌파 방침을 굳혔다는 후문이다. 김태정(金泰政)전법무장관의 해임만으로 파업유도 의혹을 우회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대통령은 국면돌파라는 정치적 차원만이 아니라 인생의 가치라는 기준에서도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여권의 한 고위인사는 『김대통령 자신이 그토록 저항했던 공작정치가 존재하고, 그토록 지키려했던 인권지도자의 이미지가 훼손된다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국회의 국정조사나 검찰의 재조사가 일단 강도높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공식적으로는 『사실이 아니다』 『검찰 조사보고를 보니 진전부장의 과시욕이 빚은 설화(舌禍)』라고 말한다. 하지만 비공식적 언급이나 저변의 기류에는 뭔가 찜찜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진전부장의 발언이 과장됐을 지는 몰라도,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라고 할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다. 때문에 청와대는 상당한 수준의 희생도 각오하는 모습이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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