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자동차와 대우자동차간의 빅딜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최근 삼성생명이 삼성자동차의 부실이 확연해진 이후에도 계속 거액의 대출을 허용해 왔다는 점이 밝혀져 문제가 되고 있다.도하 각 일간지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삼성생명은 삼성자동차가 「사실상의 부실기업 판정」인 빅딜대상기업으로 선정된 이후인 올해 4월 이후에만도 추가로 약 1,500억원 가량을 대출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융구조조정이나 재벌개혁과 관련하여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삼성생명의 행위는 금융감독규정의 측면에서 볼 때 아무런 하자 없는 행위이다. 은행감독원의 해석에 의하면 삼성차에 대한 삼성생명의 대출총액인 5,400억원은 동일계열 여신한도인 약 1조원 이내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대출에 대한 이자가 꼬박꼬박 납입되고 있기 때문에 현행 대출 건전성 분류상 이 대출은 「정상」으로 분류된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출채권은 사실상의 부실채권이고, 향후 이 대출에 의해 삼성생명의 주주나 계약자들은 이 대출이 없었더라면 회피할 수도 있었을 손실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
즉 대출결정이 과연 주주나 계약자를 위한 결정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목적을 위한 결정이었는지에 대해 충분히 의심의 여지가 있다.
셋째, 이같이 석연치 않은 금융기관의 행동이 비단 삼성생명이라는 특정 금융기관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대한생명의 예에서 보듯이 과거에도 비일비재하게 있었고, 현대증권의 예에서 보듯이 요즈음에도 심심치않게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행동은 언제나 계열사에 대한 편법적인 자금지원이라는 의심을 자아내는 행동이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이제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보자. 우선 세번째 측면부터 보면 아직도 재벌계열의 제2 금융권 금융기관은 해당 재벌의 「자금줄」 내지는 「사금고」로서의 역할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문제점이 조금도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재벌들은 금융구조조정을 이용하여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금융기관을 자신의 휘하에 편입시킬 것인가에 골몰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두번째 측면의 교훈은 재벌이라는 주인이 확실하면 할수록 해당 금융기관은 주주 일반의 이익이나 고객의 이익보다는 재벌의 종합적인 이해관계에 봉사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만고의 진리」이다. 즉 금융기관에 대한 주인찾아주기 운동은 매우 섬세한 보완책이 없는 한 경제의 효율성을 증진하기 보다는 경제 왜곡을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첫번째 측면을 곰곰히 씹어보면 위에서 말한 그 「매우 섬세한 보완책」이라는 것이 얼마나 공허할 수 있는가를 절감하게 된다. 경제외적인 논리로 주주나 고객의 이익에 반하면서 계열사를 도와주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규제를 아무리 신설한다고 해도 금융기관은 얼마든지 이런 규제를 우회하여 당초의 목적을 관철할 방법을 찾아내기 마련이다.
결국 섬세한 보완책만 마련된다면 그 주인이 비록 재벌이라 할지라도 금융기관에 확실한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경제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현실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다.
섬세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좋은 해결책은 금융기관에 대한 재벌참여를 적극 봉쇄하고 주주나 고객이 금융기관의 잘못된 경영행위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기회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번 삼성생명의 경우 감독기관은 그렇다치고 주주나 계약자가 실정법에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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