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십니까? 잠깐만 기다리세요』 1일 오전 11시 인터뷰 시간과 장소를 정하기 위해 그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전화기를 통해 흘러 나오는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탤런트 원미경, MBC 이창순(42)PD 부인이었다.이날 오후 1시30분 MBC 4층 로비에서 준수한 외모에 말끔한 복장의 이창순PD를 만났다. 『단정하고 깨끗한 복장을 좋아한다. 작업 때도 마찬가지다』 상당수 PD들의 지저분한 복장과 사뭇 다르다.
『요즘 9월 방송될 미니시리즈 작품 스토리와 캐스팅 구상을 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가난하지만 열정적인 젊은이들 사랑을 그려 볼 작정이다』
인터뷰 전날 아내와 함께 동행했던 양평에서 작품 구상 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다음 작품에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뒤 연출한 「애인」 「신데렐라」 「추억」등 세 작품이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히트를 쳤기 때문이다.
연극, 영화를 좋아해 자연스럽게 PD를 지망했다. 연대 신방과를 졸업한 뒤 85년 MBC에 입사,「설중매」등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물로 AD(조연출)생활을 했다. 여기서 그는 인생에 중요한 계기를 맞는다. 「임진왜란」에 출연한 원미경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곤혹스러운 듯 담배를 꺼내문다. 『주연 연기자라 부담이 있었으나 스타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일반여자와 다를 바 없다. 성격이 불같고 감정표현이 확실한 와이프가 스타의식이 강했으면 자식을 세명이나 낳았겠느냐?』고 반문한다.
연출 이야기가 나오자 청산유수다. 그는 보통 5~6년하면 청산하는 AD 생활을 2년 더 했다. 김종학 PD의 「여명의 눈동자」의 조연출이 예상보다 길어졌기 때문. 92년 5월 특집극 「5월의 이중주」로 「입봉」한 뒤 7년째 방송되던 「한지붕 세가족」에 투입됐다. 힘이 들었다. 짜여진 포맷에 맞추려다보니 마음대로 연출할 수도 없었고 연기자와 조화도 이루지 못했다. 작업 스트레스로 아내와의 사이도 멀어졌다. 무조건 떠난 2년간의 미국 유학생활에서 아내와 관계도 좋아졌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연출 스타일을 바라보게 됐다. 『와이프가 번돈으로 공부했다. 부부란 함께 생활하는 건데 무슨 자존심이 상하겠느냐』며 웃는다. 이PD 부부는 상대방 영역에 대해 항상 대화한다.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항간에 와이프가 캐스팅을 좌지우지한다는 말은 터무니 없는 소리다』 단호한 어조다.
95년 5월 복귀한 뒤 베스트극장 「사랑이 흔들릴 때」등 5편을 연출하고 96년 그의 출세작 「애인」을 연출했다. 감각적인 영상과 어우러진 유부남·유부녀 사랑 이야기는 불륜 논쟁을 야기하며 애인 신드롬을 낳았다. 기획 당시 중역진들은 소재가 불륜이라며 무려 4개월이나 제작 자체를 반대했지만 결과는 엄청난 성공. 『결혼 후에도 사랑의 감정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애써 외면하고 무시해, 이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 드라마란 대중들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를 표현하는 것이다』 자신의 드라마관이자 사회적 문제에 등한시한다는 항간의 지적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97년엔 한 남자를 두고 자매가 벌인 사랑이야기 「신데렐라」를, 98년엔 젊은 부부들의 이혼과 재결합을 다룬 「추억」을 연출, 스타 PD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원미경의 남편 이창순이 아니라 PD 이창순으로 자리매김되는 시기였다.
유동근 김승우 최진실 황신혜 등을 작품에 자주 출연시키는 이유.『캐스팅에서 가장 고려해야 할 요소는 연기력이겠지만 연출자와의 교감여부가 상당히 중요한 조건이다』
감정표현을 좀체로 하지 않는 이창순 PD는 앞으로 아내처럼 확실하게 감정을 표출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작품에서도 이러한 스타일을 추구할 계획이다. 『와이프는 좋은 연기자이며 요리 잘하는 주부』라는 칭찬 한마디를 남긴채 다음 작품 출연자를 만나러 간다며 자리를 떴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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