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례적 1시간30분 당무보고 안팎 -재선 패배가 청와대와 집권 여당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4일 국민회의 지도부로부터 주례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고가옷 로비의혹사건과 선거참패의 인과관계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소상하게 드러냈다. 이날 보고는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이례적으로 1시간30분동안이나 계속됐다.
김대통령은 우선 김태정(金泰政)법무장관의 거취문제에 대해 또 한번 명확한 선을 그었다. 김영배(金令培)총재대행이 당에서 취합한 여론의 형식을 빌어 『법적 책임과는 관계없이 김장관이 스스로 국정운영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며 사퇴유도를 완곡하게 건의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김대통령은 『장관은 책임질 일이 있으면 나갈 수도 있고 들어올 수도 있다』고 전제, 『그러나 원칙을 저버릴 수는 없다』고 유임방침을 재확인했다.
김대통령은 검찰수사 결과를 되풀이 설명까지 하면서 『법적인 것은 아니지만 김장관의 부인에 문제가 있다면 밍크 코트를 즉각 되돌려 주지 못한 것』이라고 세심하게 지적했다. 그럼에도 김대통령은『여론의 심판에 따라 희생양을 만드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재선거의 패인에 대해 『옷사건이 주원인이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민심의 악화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김대통령은 나아가 『옷사건은 일부 장관 부인의 지각없는 행동으로 빚어진 일이지 당에는 책임이 없다』며 책임소재를 명확히 했다.
김대통령은 대신 『중산층과 서민이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만큼 경제회복의 과실이 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결국 김대통령의 상황인식과 대처논리는 병립적이다. 김장관의 거취문제와 관련해선『마녀사냥은 안된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장기적이고 제도적인 대책으로 민심을 달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는 김장관의 퇴진을 바라는 민심을 「옳지 않은」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듯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잠복해 있지만 여권에는 여전히 다른 목소리가 있다. 우선 김종필(金鍾泌)총리가 바위와 부딪치기 보다는 돌아가자는 「물의 논리」를 갖고 있다. 야당과는 전선을 형성할 수 있지만, 국민정서에 맞서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김총리는 김장관의 자진사퇴 필요성을 김대통령에 전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국민회의도 민심의 이반을 확인했지만, 이를 되돌릴 대책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미로를 헤매는 듯하다. 정동채(鄭東采)기조위원장은『긴 호흡으로 대처해야지, 죽끓듯 하면 안된다』면서『이제 민심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일 것』이라고 말해 청와대와 보조를 맞췄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당 전반의 기류와는 괴리가 있어보였다. 한 관계자는 『장관 한 명의 진퇴를 정권전체의 권력누수와 직결시키면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유승우기자 swyoo@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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