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에는 「노장」 「신세대」라는 말이 없다. 대신 「노인」과 「아이」만 있을 뿐이다. 원로들은 현장에서 영화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후배들을 『아이』라고 부른다. 후배들은 어려운 시절 한국영화를 이끌었던 그 선배들을 『노인네』라고 빈정거린다. 둘 사이의 불신의 골을 짐작케 한다.1일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한국영화인협회의 기자회견에서도 이런 모습이 나왔다. 영화감독인 정진우 이사. 먼저 자신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한국영화를 만들어왔고, 또 얼마나 의리가 있었는지를 얘기하고는 『아이들이 영화계의 주도권을 잡으면 너무나 불행하다. 요즘 한국영화에는 색깔이 없다. 퇴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정 후배(부위원장이 된 배우 문성근씨)에게 화살을 돌렸다. 『이제 겨우 10년차다. 한창 공부해야 할, 연기에 눈 뜰까 말까 한 어린 배우다. 그런 아이가 모든 영화인이 존경해야 할 영진위 실무를 맡아야 하는가. 애들을 갖다놓고 어쩌자는 거냐』 그는 『한국영화계에는 단체가 3개 뿐』이라고 했다. 원로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영화인협회, 제작자협동조합, 극장협회.
젊은 영화인들의 모임인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강대선 이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김지미 이사장이 법적인 잘못을 들먹이며 영진위 위원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선언도 『애들 밑에서 어떻게 일을 하냐』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젊은 영화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선배는 하는 일 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방해가 되니 하루 빨리 몰아내야 할 「노인」이다. 그래서 「충무로 포럼」에서 그들은 당당하게 영진위 후보를 뽑는 설문조사까지 했다. 기피인물, 무자격자 선배들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하는 성명서를 돌린 것은 결국 자신들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비난을 들었다.
구체적 정책보다는 무조건 감정으로 맞서기에 그들 사이에 「토론」이란 없다. 선배를 찾아가 의견을 구하고, 후배를 불러 진심어린 충고를 하는 모습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자신도 지난 시절 젊은 영화인이었고, 세월이 흐르면 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노장이 된다는 사실을 서로 모르는 것일까.
/이대현기장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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