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햄릿의 고민」에 빠져있을 법 하다. 김태정(金泰政)법무장관을 유임시켰지만 그게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내심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논리적으로는 검찰 수사결과 법적 책임이 없다면 문책도 없는 게 당연하지만, 여론은 여전히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더욱이 김대통령은 누구 보다도 여론을 중시한다는 민주주의의 신봉자다. 국민 여론이 정말 비판적이고 그 농도가 갈수록 진해진다면, 「법적 책임이 없으면 유임」이라는 논리를 고수하는데 상당한 부담이 따르게 된다.
청와대 정무·공보·정책기획수석실과 민정비서실 등은 분주하게 민심을 탐지하고 여론조사도 실시하고 있다. 민심의 소재를 파악, 김대통령에 보고하기 위해서다. 이미 상당부분 취합돼 있다. 잠정적으로 서민들이 IMF의 고통과 동떨어진 지도층의 행각에 대한 분노, 평소 검찰에 대한 불신감으로 검찰 수사결과를 믿지않으려 한다는 결론도 내려져 있다. 이와는 달리 반(反)DJ세력이 사안을 확대, 현 정부를 흔들려 한다는 목소리도 접수돼 있다.
만약 지금처럼 혼돈의 여진이 계속되면, 김장관의 거취는 다른 차원에서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김대통령의 문책은 없지만, 김장관이 스스로 사퇴할 수는 있다. 시기를 놓치고 밀린다는 부정적 측면은 있지만, 당장 뒤숭숭한 분위기를 다잡을 수는 있다. 하지만 김장관의 자진사퇴는 김대통령이 유임의 논리를 부인해야 하는 처지로 이어진다. 특히 권력의 안정성이 위협받을 지 모른다는 우려도 김대통령 주변에서는 적지않게 대두된다. 제2, 제3의 희생을 요구하는 도전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해도 국민정서는 현실이고, 이를 거스르는 게 오히려 더 큰 위험을 안게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민은 이번 사건 때문만이 아니라 실업, 생활고, 국민연금 파동 등으로 갖고있는 분노를 김장관에게 쏟아붓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대통령도 직·간접적으로 이런 의견을 듣고 있다. 논리냐, 정서냐 바로 그게 김대통령의 고민이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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