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너무한 것 아닙니까.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이제는 가족들까지 이 지경입니까』 2일 본사에 전화를 건 한 독자의 울분에 찬 탄식이다.현직 중등교사라고 밝힌 이 독자는 『아내 생일날 몇 만원짜리 속옷 한 벌 선물하려 해도 며칠을 별러야 하고 막상 가게에 들러서도 가격표에 쭈뼛거리는 게 우리네 살림살이』라며 『(돈을)가진 사람들과 살림이 다른 건 당연하지만 (권력)있는 사람들까지 덩달아 서민들을 주눅들게 해도 되는거냐』고 반문했다.
전·현직 고위층 부인들의 사교문화의 한 단면을 드러낸 「고가옷 로비의혹」사건을 바라보며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지수는 여느 사건과 확연히 다르다. 더구나 이번 일의 주인공들이 일부 빗나간 졸부들이 아니라 개혁을 줄곧 외쳐온 국민의 정부 핵심각료들의 부인들이어서 서민들은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장관급 부인들이 그들만의 서클을 만들어 봉사활동을 한다면서도 유명 옷가게를 들락거리며 수십, 수백만원의 옷을 거리낌없이 사고 100만원짜리 쿠퐁으로 대금을 결제하며, 직간접적인 로비와 청탁의 대상이 됐다는 것에 서민들은 거의 배신감마저 맛보고 있다. 400만원대의 월급으로 하이클래스보다 더 위라는 「오버클래스(over class)」생활을 누릴 수 있는 비결도 궁금하기만 하다.
『수백만원대 고가옷을 「걸치고」 로비를 계산하는 그들이 매일 끼니와 약값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을 만나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굳이 IMF 실업자나 노숙자를 들먹일 생각은 없습니다. 국가를 경영하고 개혁을 외쳐 온 공직자의 가족들이 서민들의 처지나 마음과는 동떨어져 그들만의 문화와 가치를 지향해 온 현실이 답답할 따름입니다』
고급신분이 요구하는 도덕적 책임, 즉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그 용어의 생경함만큼 우리 사회와는 무관한 윤리규범일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네 서민들은 『으레 그렇지』라며 대범하게 넘어가는 것에도 익숙하다. 하지만 이날 울분을 터뜨린 독자는 이 대범함을 「비리의 일상화」가 낳은 어처구니없는 사회병리라고 진단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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