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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칼럼]김대통령의 현실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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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칼럼]김대통령의 현실인식

입력
1999.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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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대통령은 울란바토르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내 나이로는 과중한 스케줄로 국가를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성과를 이루었는데, 국내신문이 이런 것은 밀어내고 옷문제를 대서특필하는 것이 실망스럽고 한편으로는 국민에게 죄송하고 착잡한 심정이다』라고 말했다.김대통령은 그 전에도 『대통령에 취임한 후 밤잠을 설치며 열심히 일해서 환란을 극복했고, 해외언론들은 이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데, 국내언론들은 한일어협이나 국민연금 등의 차질을 내세워 총체적 국정혼란이라는 식으로 지나친 비판을 하고 있다』고 유감스러워 한적이 있다.

노태우·김영삼씨등 전직대통령들도 언론과 시중여론에 대해 자주 섭섭함을 털어놓곤 했다. 나는 자나깨나 나라를 위해 일하면서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는데, 왜 잘못한 일에만 관심을 보이느냐는 것이 대통령들의 한결같은 불만이다.

신문방송들은 사소한 잘못을 부풀려서 보도하고, 야당은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고, 국민은 감정적으로 받아들여 여론이 들끓는다고 생각될 때 대통령이 유감스러워 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특히 외국방문중 국내신문을 받아보면서 대통령이 그런 섭섭함을 털어놓는 경우가 지난 정권에서도 여러번 있었다.

이런 감정은 자연스런 것이지만 사태판단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이 자나깨나 나라를 걱정하고 국정을 잘 이끌어가는 것은 국민이 보기에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전혀 특기할 만한 사항이 아니다. 몸과 마음을 바쳐서 나라일을 잘 하겠으니 나를 뽑아달라고 국민에게 호소하던 대통령후보 시절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시절을 생각한다면 대통령이란 나라의 큰 어른이라기 보다 국민의 큰 일꾼이라는 인식으로 돌아갈 것이다. 큰 일꾼으로서 나라의 주인인 국민 앞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는 자명하다.

「사소한 잘못」이 왜곡과장되는 경우는 흔히 일어난다. 언론도 야당도, 또 여당 자신도 그 점에 있어서 무책임할 때가 많다. 국민들 역시 왜곡과장된 정보에 냄비처럼 끓어오르고, 본말이 전도되는 감정적 판단을 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언론이나 여론에 무조건 굴복할 수도 없고, 심각하게 들끓는 사태를 무조건 외면할 수도 없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고집하기도 어렵다. 대통령이란 순교자가 될 수 없는 직책이다. 대통령에겐 이상도 중요하지만 여론이라는 현실도 중요하다.

장관부인들과 재벌부인이 얽힌 옷 로비 사건은 이미 국민의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사건 자체도 문제지만,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의혹들이 민심을 등돌리게 했다. 이 사건을 처음에 조사했던 청와대 사직동 팀은 진실을 밝히는 대신 진실을 덮으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리고 조사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는 누군가 상당부분을 은폐하여 대통령으로 하여금 문제삼을 일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한 검찰은 법무부장관부인을 비호하기 위해 급급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대통령은 울란바토르에서 『법무부장관 퇴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퇴진론과는)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는데, 이런 인식 역시 잘못된 보고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대통령의 말대로 어느 정권에서나 철없는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오해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잘못 자체가 아니라 그에대한 대통령의 인식과 판단이다.

진실을 모르고는 대통령이 정확한 현실인식을 할 수 없고, 바른 판단도 할 수 없다. 대통령은 문제가 생겼을 때 경보를 울려 자신에게 진실을 전해주는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야 한다.

김대통령은 이번 사태를 정부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명한 수사와 공정한 처벌뿐 아니라 수사축소나 은폐, 왜곡된 보고, 적절치 못한 언행으로 수사의 공정성을 훼손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떤 조치가 있어야 한다.

문제가 있는 정보시스템을 방치하면 대통령의 현실인식을 그르치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한다.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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