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고가옷 로비의혹」 사건에 대한 수습책을 마련하기 위해 일주일 넘게 고심을 거듭하면서 보여준 것은 역설적으로 여권의 위기관리 체제의 부재였다. 초기단계부터 그 과정을 추적해보면 이른바 여권 핵심부의 위기대처 능력 및 의사결정 구조의 취약함과 무신경이 여실히 드러난다.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여권 내부의 상황인식 및 위기관리 시스템이 작동한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러한 시스템이 있는지조차 의심이 갈 정도다. 이번 사건이 한창 고비로 치닫고 있던 지난 주말 청와대와 국민회의, 즉 당정간에 대책마련을 위한 의미있는 회동은 없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김중권(金重權)청와대비서실장이 국민회의 김영배(金令培)총재대행과 한화갑(韓和甲)특보단장 등에게 전화를 한 사실은 확인되지만 여기서 사건의 본질에 대한 천착이 이뤄졌는지는 다소 의심스럽다. 국민들의 따가운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오히려 「신·구주류간 갈등설」 「개각주도에 따른 책임론」등 부차적 문제에 매달린 흔적이 역력하다.
주말을 거치면서 31일 최고조에 달했던 김태정(金泰政)법무장관의 사퇴유도 분위기가 한나절만에 사그러든 배경도 석연치 않다. 당정의 핵심인사들은 『처음부터 그런 분위기는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청와대로부터 흘러나온 여러 목소리 가운데에는 분명 김장관의 거취문제와 관련된 얘기가 한 축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무리 김대통령이 순방외교중이었다고는 하지만 이같은 상황은 청와대쪽의 「통제능력」에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뒤늦게 부랴부랴 「검찰수사를 지켜본 뒤 수습」쪽으로 물줄기를 돌리기는 했지만 그것이 여권 내부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도 장담할 수 없다. 31일 청와대 고위인사로부터 전화를 받은 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수습책보다는 당이 청와대를 너무 몰아가고 있다는 얘기를 하더라』고 전했다.
공동정부의 한 축이자 대통령 부재시 국정을 총괄해야하는 김종필(金鍾泌)총리가 사태수습에 노력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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