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에 관한 피카소의 명상/다니엘 킬 엮음·사계절 발행 -20세기 막판이라 랭킹 매기는 작업들이 한창이다. 피카소를 사기꾼이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도 피카소가 20세기 내내 최고의 화제를 몰고 다닌 화가라는 것에는 동의할 것이다.
그는 수많은 여자와의 연애행각으로도 유명했지만 동시에 공산당원이기도 했다. 아마도 역사상 가장 부유한 공산주의자였을 그는, 그림으로도 재벌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첫 번째 화가였다.
이미 16세에 라파엘로처럼 그렸다고 말했을 정도로 천재적인 데생 실력을 보여줬지만 정작 미술사에 남은 그의 족적들은 기괴하고 파격적인 그림들이었다. 이렇듯 그의 내부에선 온갖 모순들이 유산상속을 기다리는 형제들처럼 공존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자신의 예술관이나 정치관을 드러낼만한 어떤 텍스트도 집필하지 않은 채 죽어버렸다. 그가 죽자 뉴욕의 한 화가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내 아버지가 죽었다』, 그리하여 『나는 비로소 해방되었다』고.
그 무섭고 대단한 아버지가 남긴 말들을 주워담은 이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이들 덕분에 책 장사들이 먹고 사는 거겠지만 어쨌거나 이 책은 그가 생전에 지인들에게 한 말들을 채록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피카소라는 거인이 얼마나 자신만만했는가, 동시에 얼마나 약한 존재였나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어떤 힘이 그로 하여금 평생 오 만 점이 넘는 작품을 그리도록 만들었는가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를테면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자연을 뒤따르지 않고 자연에 앞서서 자연과 함께 작업한다. 사람들은 실제 내가 투우 경기를 보고 투우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해다. 그 그림은 투우 경기의 입장료를 벌기 위해 저녁에 미리 그린 것이다』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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