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농무부 동맥연구소장 김옥경(63)씨가 세계곡물과학기술협회(ICC·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Cereal Science and Technology) 차기(2000~2002)회장이 되어 한국에 왔다. 19명의 역대 회장 당선자중 여자이자 아시아계로는 처음이다. 김씨는 김영정 전정무2장관과 더불어 31일 「자랑스러운 이화인상」을 받는다.ICC는 곡물품질을 표준화하고 재배기술을 교류하기 위해 생겨난 국제단체. 미국 캐나다 유럽 등 50개국이 회원국으로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중국이 가입해 있다. 김씨는 그래서 자신이 회장으로 활동하는 기간에 한국도 회원국으로 가입하라고 정부에 권유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미 97~98년에 전세계 81개국 4,0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미국곡물화학자협회(AACC·American Association of Cereal Chemists)회장을 지냈다. 『AACC회장을 지낸 경력이 크게 도움이 되었겠지만 식량강국인 미국의 대표가 거구의 백인남성이 아니라 작고 싹싹한 동양계 여성이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 대표들의 호감을 산 것 같다』고 말한다. 김씨는 평소에도 『인종차별, 남녀차별은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이같은 자신감은 유학생활의 시련에서 싹 텄다.
59년 이화여대 약학과를 우등졸업하고 미 캔자스주로 유학을 갔다. 오빠 둘이 캔자스주립대에 유학하고 있어 선택했는데 약학과정이 없어 화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하루 세시간만 자며 공부했지만 강의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도착 당시 50kg이던 몸은 한 한기만에 39kg으로 줄었다. 말이 안 통하니 사람을 사귈 수도 없었다. 오빠가 서울로 돌아가며 남기고 간 애완거북이 두 마리가 유일한 말벗. 방학이면 학생용 숙소를 섬머스쿨 참가자에게 내주고 아파트 지하방을 얻어 혼자 생활했다. 『어느 날 돌아와보니 거북이가 죽어 있었다. 지하방이라 벌레가 잘 끼니까 집주인이 아무 생각없이 살충제를 뿌렸던 것이다. 거북이를 묻으며 군중속의 고독만 해도 좋다고 느꼈다』.
절대고독속에서 김씨는 달라졌다. 『미국인들도 동양인들에게 익숙치 않아서 어색해 하는 것 뿐이다. 내가 마음을 터놓으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경쟁에서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나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덕분에 김씨는 딸 둘을 낳아 기르면서 37세(73년)에 박사학위(캔자스 주립대 곡물화학)를 받았다. 남편 정도섭(丁道燮·64·캔자스주립대 공대교수)씨의 격려도 힘이 됐다.
김씨는 지금까지 발표한 논문만 160여편, 인용되는 강연도 130회에 이르는 등 곡물학자로서 전문성을 세계에 인정받고 있다. 또 AACC회원으로서 73년 『학자 뿐 아니라 학생들도 곡물화학자 총회에 참석, 선배들과 사귈 수 있도록 경비를 지원하자』고 제안한 것이 실행되어 지금은 한국학생들도 미국총회에 초청받아 갈 정도가 됐다. 김씨는 『현재의 인구증가율대로라면 2035년에는 세계인구가 2배로 늘어난다. 선진국은 가뭄에도 잘 자라고 기초단백질 성분이 들어 있어 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곡물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며 『곡물연구에 국경이 없어지는 만큼 한국에도 ICC가입을 권유하고 싶다』고 말한다. 글 서화숙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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