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이 3박4일의 북한방문 일정을 마치고 28일 저녁 서울에 왔다.페리 조정관의 이번 방북은 한국 미국 일본이 수개월간 머리를 맞대고 마련한 대북권고안을 북측에 설명하고 북측의 반응을 직접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1차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페리조정관은 26일 북한 권력서열 2인자인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 빌 클린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으며 미국통으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 직보를 할 수 있는 강석주(姜錫柱) 외무성 제1부상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사실상의 「대미협상대표역」을 맡은 강석주와 연사흘간 마라톤대화를 가진 것이다. 페리조정관 일행이 평양주변의 짧은 관람일정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낮시간에 강석주와 테이블을 함께 했다는 것은 「대북포괄권고안」의 모든 것을 북측에 충분히 설명했음을 짐작케한다. 북측도 진지하게 페리권고안을 듣고 자신들의 입장을 피력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북한중앙통신은 28일 『페리조정관이 강석주제1부상과 3일동안 회담을 갖고 미정부의 대북정책 검토와 관련한 문제들을 통보했으며 우리측은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대조선 적대정책을 근본적으로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언론이 공식 확인하지는 않고 있으나 페리 조정관이 김일철(金鎰喆)인민무력상 김영춘(金英春)인민군 총참모장 조명록(趙明錄)총정치국장 겸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등 군부실력자들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게 당국자의 분석. 북한의 경우 노동당·행정관리들과 달리 군부는 대남유화정책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페리는 이들을 상대로 「핵과 미사일개발포기」를 강력히 설득하고 이를 받아들일 경우의 대가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미측이 북한군부와 「직접대화」를 가진 것은 처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좌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페리조정관이 김정일을 만났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북측이 「페리권고안」의 전모를 확인하고 「협상의사」를 피력했다는 점만으로도 앞으로 한반도문제는 일단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볼 수있다.
이같은 정황을 토대로 보면 앞으로 한반도평화정착을 목표로 한 「대북포괄접근구상」은 페리조정관-강석주제1부상을 축으로 한 협상채널을 통해 구체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이 채널에 한 일양국대표가 가세함으로써 북·미+한국·일본의 신(新)4자대화가 태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북측에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이른바 「빅딜협상」이 시작될것이라는게 당국자의 예측이다. 물론 북측의 그간 협상전술로 미루어 「보다 많은 당근」을 요구하는 북측과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하는 한·미·일 3국간의 지루한 실랑이가 이어질 수도 있다.
정부관계자는 『빅딜협상이 시작되면 이와 동시에 남북당국자간대화를 비롯 북 미 및 북 일 수교협상 등 한반도 평화체제정착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며 『낙관은 금물이지만 한반도정세가 급물살을 탈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윤승용기자 syyoon@hk.co.kr
(C) COPYRIGHT 1999 THE
HANKOOKILBO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