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인문학연구소(소장 김진영·金鎭英 국문학과교수)는 26일 서울캠퍼스 본관 대회의실에서 「21세기의 여성문화」를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가졌다.이날 세미나에는 조정원(趙正源)경희대 총장, 김태영(金泰永)인문학연구소 초대 소장 등 100여명이 참석, 5시간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발제
「왜 이시대에 여성이 희망인가」 (金鎭英 소장)
여성 혹은 페미니즘의 문제는 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에서 핵심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문제는 그동안의 남성적이고 권위적인 근대적 패러다임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봉건적인 인식틀에 많은 부분 매여 있는 한국사회의 모순과 억압을 반성하고 극복하는 대안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사회의 경우 전통적으로 하나의 여성상이 강조되어 왔다. 「희생과 헌신, 봉사의 여성상」이 그것이다. 유교적인 관습과 봉건적인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이 여성상은 한국의 여성들을 인격적으로 고양시킨 점도 있지만 여성에 대한 규제와 억압의 발판이 되어왔다.
이는 여성의 자발적인 산물이 아닌,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 면이 없지 않다.
여성이 남성보다 못하다는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전근대적 편견은 이제 깨어져야 한다. 오히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언어감각이 뛰어나며 예술가적 감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기존의 남성위주의 문화는 많은 부분을 시정하고 여성적인 것과의 연대와 화해를 추구해야 한다. 한쪽의 지배와 다른 한쪽의 종속은 결국 양자 모두의 본질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토론
정연교(鄭淵敎) 경희대교수(철학과)= 여성을 집단적으로 비하해 「아줌마」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이 말 속에는 「천박한 행태를 일삼는 중년여인」이라는 아줌마 폄하의식이 숨어 있다. 「아줌마 문화」를 대표하는 요소로 이기성, 즉물성, 소비지향성 등을 꼽는다.
그러나 아줌마들이 이기적이라면 「자신에 더하여 가족과 친구까지 위하는」가족이기주의나 집단이기주의라는 말을 대신 써도 무방하다. 구태여 아줌마를 특별히 더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또 아저씨와 아가씨가 즉물적이지 않아 보이는 것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아저씨들은 직장생활을 하기에 만나는 사람이 많아 집단생활에서 명성 평판을 우선시하며 아가씨들은 평판이 떨어질 경우 혼인 등에서 치러야 하는 대가가 치명적이기 때문에 조신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줌마를 남녀노소의 적으로 만든 것은 아줌마 내부에 원인이 있다기보다는 왜곡된 심리현상, 즉 「왕따 심리」라고 본다.
정당한 이유없이 특정인이나 집단을 비난하거나 소외시키는 성향때문에 아줌마문화를 폄하하는 문화가 암암리에 만들어지고 확산된 것이다.
권택영(權澤英) 경희대교수(영어학과)= 여성은 지금까지 역사의 주체라기 보다 객체였던 성향이 강하다. 남성이 이끌어 온 역사 속에서 있지만 없는 것과 같은 존재였다.
남성들이 이끌어 온 역사를 반성하는 저항운동 중에서 페미니즘은 20세기 후반부에 가장 성공한 사회운동이었다.
남성이 중심이 돼 이루어 온 인류문화는 20세기 후반부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21세기의 현실에 맞는 우리의 패러다임을 갖지 못하면 우리는 세계 속의 고아가 될 지 모른다.
신용철(申龍澈) 경희대 교수(사학과)= 남녀평등의 문제에서 우리가 사는 동아시아는 유럽 등에 비해 훨씬 더 남성우월적인 사회였다.
그러나 동아시아에도 이 문제를 고치려 한 이탁오(李卓吾·1527~1602)라는 중국사상가가 있었다. 그는 여성의 지위 또는 권리에 대해 옹호입장을 펴 당시로는 용납될 수 없었던 자유결혼, 남녀공학 등을 주장했다.
이때문에 그는 탄핵을 받았다. 생명을 건 선각자의 정신이 지금 중국 여성운동의 전통을 만들어냈다.
유진월 한서대교수(문예창작과)= 21세기를 앞둔 지금 여성작가들은 문학계의 리더그룹으로 부상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작가 개인의 능력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여성의 지위와도 연관된 사회적 현상이다.
사회구조와 인식의 변화는 작가들의 글쓰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21세기의 여성문학은 더 발전적인 양상으로 전개되리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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