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메시스-번역서 가이드북 1999 /열린책들 편집부 엮음 /559쪽, 9,500원 -번역은 단순한 모사(模寫)라기보다 제2의 창조다. 번역이 많은 땀과 열정과 고도의 지적인 작업을 거쳐 탄생하는 열매고, 그래서 원전에 값하는 아름다움을 가졌다는 사실을 누구라서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건 꿈같은 이상이다.
미묘한 번역의 차이를 두고 토론이 벌어지고, 좀더 좋은 번역 문장을 찾기 위해 역자끼리 고민하는 모습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은? 다른 사람이 번역해 놓은 책을 절반은 베껴서 그것을 숨기고 출판한 뒤, 잘 된 번역이라고 상까지 받는 게 우리나라 번역문화의 수준이다.
그렇게 상을 타고도 『사실은 베낀 번역』이라고 고백할 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가 번역자 「정신」이다. 짜깁기로 번역해 놓고도 유명한 교수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은 「상식」이고, 우리 말을 깡끄리 망가뜨려 놓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문장으로 가득찬 책을 번역서라고 펴내는 것이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열린책들에서 한 해 동안 국내 번역된 책들을 모두 모아 소개하고 그 가운데 중요한 책을 서평하는 「미메시스」(그리스어로 「모사」라는 뜻)를 창간한 것은 그래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창간사로 「서평은 많을수록 좋다. 가치있는 책의 번역은 많을수록 좋다」는 두 마디만 하고 말았지만 이 책은 국내 번역문화가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아야 한다는 선포와도 같다.
책은 문학, 인문·사회, 예술·과학 등으로 나누어 지난 1년간 화제를 모았던 82권의 책들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들의 평을 싣고 있다. 인상비평이나 순진한 감상에 머무는 경우도 있지만 번역서의 가치를 엄밀하게 묻는 글도 적지 않다.
고려대 임홍빈 교수는 양우석씨가 옮겨 서광서에서 펴낸 슈펭글러의 「인간과 기술」에 대해 『원전 자체도 학술적 가치가 의심스러운 「문제의」 책이지만 그 한국어 번역본은 또 다른 관점에서 「문제작」이다. 오역이 심각한 수준이다』고 평했다.
임교수는 번역서 한 쪽에서만 6가지의 잘못된 번역을 잡아내면서 『출판이라는 행위에 최소한의 양식이 따라야 한다면 이 책은 마땅히 다시 번역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책은 창간 특집으로 「문학의 세계화」 「정신분석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다루었다. 또 번역서 1,000여 권에 대한 상세한 서지를 출판사별로 분류하여 수록했다. 또 창간을 기념한 국내 30개 출판사 설문조사를 통해 국내 최고 수준의 번역가로 이윤기, 김석희, 김화영, 안정효씨 등을 꼽았다. 연간으로 나올 이 책은 내년부터는 해마다 3월께 출간될 예정.
/김범수기자
◆해방이후 가장 잘된 번역서 5권
책 이 름 지은이/ 옮긴이
장미의 이름 움베르트 에코/ 이윤기 백년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마르케스/ 안정효 카뮈 전집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영혼의 자서전 니코스 카잔차키스/ 안정효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아놀드 하우저/ 백낙청, 염무웅, 반성완
*열린책들 편집부가 국내 30개 출판사 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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