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력(老人力)」이란 귀에 선 말이 일본에서 유행어로 등장했다.지난해 9월에 나와 지금도 인기가 여전한 같은 제목의 책이 낳은 말이다. 일본 민속학회는 최근 창립 50주년 기념심포지엄 주제를 「늙음- 그 풍부함」으로 잡고 「노인력」을 집중 논의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흐려진다. 『아, 그러니까, 그게 뭐였더라…』를 몇차례 되뇌다가 으레 『됐어요, 그만 두세요』라는 핀잔을 듣게 마련이다. 같은 상황에서 『노인력이 대단하시네요』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떨까.
「노인력」은 「힘(力)」에는 방향이 있다는 물리 상식을 떠올리면 쉽사리 이해된다. 양(陽)의 힘의 감소는 음(陰)의 힘의 증가이다. 「기억력이 약해진다」는 「망각력이 커진다」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양의 세계에 길든 우리의 눈이 음의 힘인 「노인력」을 보지 못할 뿐이다. 음의 힘을 볼 수 있게 되면 세상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노인력」은 고령화 사회를 맞은 일본이 노년층에 자신감을 불어 넣으려고 찾아낸 새로운 개념의 「힘」이다. 애초에 억지도 섞여 있었지만 보다 적극적인 「노숙력(老熟力)」논의가 시작되면서 실질적인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마쓰시타(松下)전기가 노년층의 경험과 숙련, 감을 활용하려는 「숙년(熟年) 공장」 계획을 내놓은 것이 좋은 예이다.
세월이 갈고 닦아 준 경험과 통찰이 무시되고 젊음의 활력만이 넘쳐난다면 그 세상은 위험하다. 경제 위기 이래 만악(萬惡)의 근원인 양 중고년층을 몰아세워 온 우리 현실에 안쓰러움을 넘어 불안을 느끼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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