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고 출신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생각이 있다. 정치적인 노선에 관계없이 과거 30년간 불이익을 당했다는 생각이다. 이런 이유 하나만으로 이들은 엄청난 단결력을 과시한다. 이 학교가 경기고와 함께 우리나라 양대 동창회를 형성한 것도 이런 이유다. 특히 단결력은 정·관계에서보다 법조·언론·문화·학술계 등 활동의 폭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전문영역에서 더욱 강하다.97년 12월3일 목포고 재경동창회는 서울 롯데호텔에서 700여명이 참석한 대규모 모임을 가졌다. 대통령선거 직전인데다 IMF체제로 다른 동창회들이 연말모임을 취소하던 시기라 정·관계 동문들은 행사개최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으나 회장단과 전문영역 인사 등이 강하게 밀어붙였다. 당시에는 김대중(金大中)후보 지지모임이라는 비난까지 받았지만 이런 단결력이 바탕이 돼 전문영역에서는 신정부 출범이후 정·관계보다 더욱 뚜렷한 약진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영역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분야는 법조계. 조승형(趙昇衡·2회)헌법재판소 재판관과 김창국(金昌國·7회)대한변협 회장이 오랜 인권변호사 활동을 바탕으로 한국 법조계의 중심 인물로 부상했다. 검찰에서는 신승남(愼承男·11회)법무부 검찰국장과 「12회 트리오」인 김학재(金鶴在)법무부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정충수(鄭忠秀)서울지검 동부지청장, 김규섭(金圭燮)서울지검3차장등이 요직을 장악했다. 법원에는 맹천호(孟千鎬·4회)광주고법 수석부장판사와 홍성무(洪性茂·21회)법원행정처 법정국장이 있고 변호사로는 조희종(曺喜宗·3회) 오상걸(吳相杰·4회) 권진욱(權晋郁·5회·전광주지방변호사회장) 오헌진(吳憲鎭·7회·전수원지방변호사회장) 곽창욱(郭倉旭·〃) 최창(崔昶·9회) 박상선(朴相宣·12회) 오세창(吳世昌·23회) 박수만(朴秀萬·24회) 박승준(朴勝準·27회) 박정현(朴正鉉·〃) 차성호(車成浩·28회) 안상운(安相云·29회·민변 대변인) 서영섭(徐榮燮·30회)씨가 활약중이다.
언론계에서도 최상층까지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차일석(車一錫·구 목포중 4회)대한매일신보사 사장, 최종수(崔鍾洙·1회·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전한국일보 논설위원, 장행훈(張幸勳·3회·호남대 객원교수)전동아일보 편집국장, 임수경(林秀卿)씨 아버지인 임판호(林判鎬·〃)아리랑TV 상임감사, 최봉인(崔峰寅·5회)대한매일신보사 상임고문, 김봉호(金奉鎬·6회·한국언론재단 광고영업본부장)전동아일보 심의실장, 강대형(姜大衡·7회·언론중재위 전문위원)전한국일보사 이사대우, 한국일보사 사장을 지낸 박병윤(朴炳潤·8회)한국일보사 상임고문, 김용정(金湧精·〃·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전무이사)전한국일보 논설위원, 이용호(李龍鎬·〃)스포츠조선 편집국장, 신상석(申相碩·10회)서울경제신문 편집국장, 김정명(金政明·〃)MBC 기획국장, 정훈(丁薰·11회)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고진(高進·12회)MBC 보도본부장, 이계홍(李啓弘·14회)대한매일신보 논설위원, 조상기(趙相起·17회)한겨레 편집부국장, 김충식(金忠植·21회)동아일보 논설위원 등이 활약하고 있다.
문화·학술분야에서는 국민의 정부 이전부터 배출된 인재들이 속속 대가의 반열에 올라서고 있다. 구 목포중 5회 동기인 최인훈(崔仁勳·대표작「광장」) 김은국(金恩國·미국거주·대표작「순교자」)씨와 천승세(千勝世·6회·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대표작 「만선」)씨가 문학, 극단 「미학」대표 정일성(鄭一成·6회)씨와 연극 「품바」연출가 김시라(金詩羅·14회)씨가 연극, 김경희(金京熙·5회)지식산업사 사장이 출판분야에서 확고한 위치를 굳혔다. 학계에서는 현상학의 대가 차인석(車仁錫·1회·전서울대 철학과 교수)한성학원 이사장, 「간(肝)박사」로 유명한 김정룡(金丁龍·2회)서울대 의대교수, 행정학의 대부 김신복(金信福·12회)서울대 행정대학원장 등이 명성을 날리고 있다. 민주당의원을 지낸 김장곤(金莊坤·5회)한국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 천정배(千正培·21회)의원의 장인으로 지난해 교보환경문화상 대상을 수상한 환경운동가 서한태(徐漢泰·구 목포중 1회)씨, DJ노미스트들의 모임인 중경회에서 간사를 맡고 있는 신용균(申容均·19회·현대투자신탁 기획본부장)박사등도 최근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은호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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