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9년째 호황을 접고 새 천년을 경기침체로 맞을 것이라는 전망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근거없는 「허튼 소리」처럼 들렸다. 미 정책당국자들에게는 특히 기분나쁜 헐뜯기로 비쳤을 게 틀림없다. 미 중위급 은행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뱅크는 5월 투자보고서에서 올해말이나 내년초 경기가 후퇴기로 접어들 것으로 예측했다.보고서는 『호황의 끝이 없다는 믿음은 잘못』이라며 1850년이후 미국경제를 분석한 결과 32번의 침체기를 겪었으며, 다만 침체기가 언제 오느냐는 시차가 있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기조의 분석·전망은 발표당시 소수의견일 뿐이었다. 그러나 얼마 뒤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CPI) 통계가 발표되자 상황은 적잖게 달라졌다. CPI상승률이 0.7%에 달해 90년 이후 9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인플레이션 우려의 가시화로 소수의견은 종전보다 조금 더 힘을 받기 시작했다.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은 한발 더 나아가 17일자에서 지금의 미 증시상황이 87년의 「블랙먼데이」 직전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모델 분석결과 지금의 뉴욕증시는 39.2%가 과대평가(거품)된 것으로 나타났다. 87년 8월엔 39.8%였다.
미국 최대증권사인 메릴 린치는 금리인상 여부를 다룰 18일의 FRB 공개시장위원회를 앞두고 이날 미 주가가 조만간 약 15% 정도의 조정을 거칠 것으로 전망했다. 월가의 분석가들중 상당수는 연내 금리인상 가능성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아직 소수의견이지만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겁나는 얘기들이다. 실제 상황이 이런 방향으로 전개되더라도 미국의 정책당국이 미세한 조기조정으로 급격한 주가하락이나 경기후퇴를 피해 서서히 연착륙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그런데도 로버트 루빈 전 미재무장관은 퇴임직후 『세계경제가 경제성장의 유일한 엔진기능을 미국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야말로 좀 과장하자면 거의 미국경제에 연동돼 있는 실정이다. 이때문에 우리는 미국경제의 악화가능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소수의견이지만 「겁나는 시나리오」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다수결에 의해 어떤 결정을 할 때 소수의견은 무시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 얘기할 경우엔 소수의견을 무시할 수가 없다. 오히려 더 귀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거론하는 국제통화기금(IMF) 자금의 조기상환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성급한 측면이 있다. 급격한 자본유출 시의 증시 비상계획이 지금쯤 세워져 있어야 하는데, 그 여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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